한신대정신분석대학원 11일 학술대회
승합차로 산길을 운전하던 중 몹시 신경이 곤두섰다. 이모와 함께 태운 조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서다.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고치려고 일단 일행에게 등산을 하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금세 돌아와선 언제 차 수리가 끝나느냐고 물었다. 짜증이 나서 다시 등산을 하고 오라고 했다. 잠시 뒤 이모가 흰 천에 몸이 감긴 채 들려왔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한 20대 남성의 꿈이다. 심리 상담을 받던 중 털어놓은 얘기다. 어려운 대인관계가 그의 평소 고민이었다.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어느 순간 너무도 냉정하게 관계를 끊는 데 익숙해져 있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 깨닫지 못했던 감정의 비밀이 그의 꿈에 있었다.
그를 상담한 이준호 한신대 정신분석대학원 교수(광화문심리치료센터 소장)는 “내담자는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남을 위해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청난 공격성과 분노가 일곤 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꿈 속에서 느낀 짜증과 죄책감이 이를 확인해줬다.
이렇듯 꿈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마음의 문제를 푸는 단서가 된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으로서는 유일한 한신대 정신분석대학원이 두 번째 학술대회의 주제를 ‘꿈’으로 들고나온 이유다. 학술대회이지만 대중을 염두에 둔 강연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교수는 “꿈을 사고 팔 정도로 한국만큼 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는 드물다”며 “꿈은 정신분석학에서도 무의식에 이르는 중요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뿌리인 정신분석학은 비과학적이라거나, 성욕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 교수는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학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110년 간 정신분석학은 많은 발전을 거쳤다”고 말했다.
학술대회에서 ‘꿈은 지금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이 교수는 사례와 함께 국내에선 생소한 현대 정신분석학의 주요 이론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신경과학(정신과)과 정신분석을 접목한 신경정신분석학, 꿈꾸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현실의 정서적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비온학파 등이다. 그렇다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심리학이 의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꿈을 이용한 정신분석 상담치료는 보통의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상담보다 훨씬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이 교수는 “무의식의 저변까지 내려가는 데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왜’라는 질문을 들고 근본적인 원인을 추적해나간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평소 꿈을 꾼 내용을 기록하는 ‘꿈 일기’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무의식이란 게 황당하거나 사소하거나 때로는 부적절한 내용이기 마련”이라며 “그렇다 하더라도 꿈을 매일 적다 보면 현실의 문제와 맞닿은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지’가 곧 치료의 출발이고, 꿈을 통해 이를 깨달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우리가 꿈을 꾸는 한 꿈은 여전히 정신의 무의식 활동을 탐구하는 왕도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신대 정신분석대학원의 제2회 학술대회는 11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 제1강의실에서 열린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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