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공연문화라고 하면 흔히 브로드웨이를 떠올리지만, 화려한 무대와 눈부신 조명 뒤에는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오프 브로드웨이(off-Broadway)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off-off-Broadway)가 자리잡고 있다.
오프 브로드웨이는 195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의 상업주의에 대항해 나타났다. 오프(off)라는 수식어는 말 그대로 브로드웨이(뉴욕 맨해튼 42~53)를 벗어난 외곽(보통 그리니치빌리지 서쪽 일대)에 자리잡은 소극장을 지칭한다. 1952년 테네시 윌리엄스의 ‘여름과 연기’가 호평을 받은 이후 좌석 수 299석 이하의 극장은 배우 계약금을 적게 줄 수 있도록 인정하는 등 ‘돈 잔치’로 전락한 주류 연극을 견제하는 대안공연으로 입지를 다졌다.
그렇다고 난해한 공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관객에게 잘 알려진 뮤지컬 ‘넌센스’, 공사판 현장을 다룬 ‘탭덕스’, 사물실험극 ‘튜브스’ 등 실험정신, 예술성, 흥행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도 많다. ‘원조 한류’격인 ‘난타’의 전용관이었던 미네타레인 극장 역시 오프 브로드웨이에 속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 중에 히트작이 나오고 이들 작품이 다시 브로드웨이 대극장에 오르면서 기존의 대안적인 색채를 잃었다는 비판이 불거졌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다. 그리니치빌리지 동쪽을 중심으로 창고, 커피하우스, 교회, 지하실 등 무대나 객석이 따로 없는 곳에서 실험극과 전위극을 주로 공연한다. 이제는 세계적인 작품이 된 뮤지컬 ‘헤드윅’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대표작이다. 1994년 맨해튼 록 클럽 돈 힐즈에서 공연을 시작한 ‘헤드윅’은 1998년 오프 브로드웨이 제인 스트리트 씨어터를 거쳐 올 3월에야 브로드웨이 대극장에 올랐다.
물론 오프 브로드웨이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모두 “브로드웨이 등용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끊임 없이 받아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같은 탄탄한 공연 시스템을 갖춘 덕에 미국 관객은 원하는 가격에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소극장 창작 뮤지컬 제작 바람이 거세다. 업계의 ‘큰 손’들도 창작공연을 위한 투자와 교육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 태동기와 달리 한국 업계는 창작공연을 상업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듯하다. 미국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장기적으로는 젊은 작가와 연출가들이 마음껏 실험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투자도 어느 정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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