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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대안이 없다는 거짓말

입력
2014.10.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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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추석을 맞은 팽목항이 모처럼 명절을 맞아 인근 섬을 오가는 귀성객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부둣가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등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추석을 맞은 팽목항이 모처럼 명절을 맞아 인근 섬을 오가는 귀성객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부둣가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등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늘은 한글날이다. 우리나라 문화유산 가운데 나는 한글에 크나큰 애정을 품고 있다. 내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김소월과 윤동주의 시를 읽고,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그렇기에 한글의 타락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참담하다. 내가 말하는 타락은 스마트폰 세대의 줄임 말이나 외국어와의 혼용 등이 아니다. 언어가 갖고 있는 원래 뜻을 자의적으로 왜곡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사과의 주체이면서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말버릇이 특히 그러하다.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이런 방식의 한글 사용이 그들의 잘못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겠지만, 그들의 값싼 품위는 가려주지 못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가 하이데거의 말에 비추어 보면 말과 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세월호 특별법을 비롯한 굵직한 현안들에서 정치권이 쏟아내는 표현 가운데 가장 교묘하게 포장된 언어가 ‘대안이 없다’는 말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같은 권력을 쥔 쪽이 즐겨 사용하는 이 표현에는 마치 ‘모든 방법을 다 고려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이다’는 나름의 결연함이 배어있다. 그럴 때도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그들의 행동과 태도로 짐작컨대 대안이 없다는 말은 유가족과 국민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잘 포장된 말로 언제까지나 세상을 속일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이 대안이 없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대안인지 집요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따라서 청와대와 여당이 하는 대안이 없다는 말은 대체로 거짓이다. 피해자의 입에서 나올 때에야 그 말이 진실로 느껴진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은 세월호 특별법과 담뱃값 인상 등 서민증세 논란에서도 국민들을 위해 더 나은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아무리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도 제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그것을 폄훼하고 무시한다. 그래도 안되면 철 지난 색깔론을 꺼내 들거나 순수하지 못한 유가족 등과 같은 음험한 분열을 선동한다. 그렇게 본질은 파묻히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지쳐갈 무렵 다른 대안은 없다며 제 이익에 충실한 안을 최선책으로 내세운다. 이런 방식이 한국 보수층에겐 여전히 잘 먹힌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 방식은 재확인됐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며, 진상규명 뿐만 아니라 검ㆍ경, 특별법 모두를 동원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의 뜻”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은 그 말을 잊은 듯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며 흘리던 기나긴 눈물 줄기는 말라버린 모양이다. 지금은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의 원인이 세월호 때문이라고 정부는 주장하고, 덩달아 보수언론은 세월호 망각을 강요한다. 새누리당은 기존 여야합의안이 최선책이며 대안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대로 유가족이 원하는 대안은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 대안을 현실에서 실행할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독선적으로 ‘내편 우선’ 정책을 펴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맞서야 할 새정치연합은 무능과 무기력, 무존재감의 ‘3無’ 정당 신세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동안 새정치연합은 여론조사 결과를 쫓아 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려는 인상이 강했다. 정체성을 잃어갔고, 계파간 갈등만 불거졌다. 한 정당 안에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계파가 존재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정당의 주도권을 쥔 세력이 그 다양함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시절 친이와 친박은 서로에게 적대적이었으나, 당의 이익을 위해서는 항상 힘을 합쳤다. “지도자의 임무는 선도하는 것이지 뒤따르는 것이 아니다 (…) 진정한 지도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를 알아내기 위해 여론조사를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을 새로운 입장으로 유도한다.”(프레임 전쟁, 21쪽) 즉 지도자는 새로운 판을 짜서 국면을 장악하고 이끌어 나갈 추진력을 가져야 한다. 지금 야권에서 누가 국민을 위한 여러 대안들을 현실에서 실행해낼 세력을 이끌 수 있을까?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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