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수는 명분에 집착한다. 고도가 기다리는데 왜 거짓 유화에 놀아나냔 거다. 경제보수는 실리파다. 고도가 오든 말든 관계 경색은 당장 손해다. 다행히도 평화 우선론과 만난다.
“14년 전인 2000년. 워싱턴과 평양을 무대로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다. 태평양 건너편의 주인공은 빌 클린턴 대통령, 평양의 상대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북한의 2인자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그해 10월 9일 워싱턴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클린턴을 만나 평양으로 초대한다는 김정일 친서를 전달했다. (…)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10월 25일 평양으로 날아갔다. (…) 하지만 11월 6일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자인 조지 W 부시 당선인은 “북한과는 협상하고 싶지 않다”고 백악관에 통보했다. 다음해 1월 20일로 다가온 퇴임을 앞둔 클린턴은 방북의 동력을 상실했다. 북·미 수교와 북핵 포기,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라는 한반도 평화의 대어(大魚)가 그물을 뚫고 달아나고 있었다. 2014년 10월 4일 북한의 2인자가 다시 움직였다. 행선지는 워싱턴이 아닌 인천이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포함한 실세 3인방이 12시간을 머물다 간 뒤 한반도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 한반도 문제 해결의 종착역은 북ㆍ미 관계의 개선이다. 그래야 북핵 문제도 풀린다. 북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지 않고는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한국은 북한과 미국을 중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한국부터 북한과의 사이가 좋아져야 한다. 2000년 10월에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것은 넉 달 전 6ㆍ15 정상회담을 가질 정도로 남북관계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서울과 평양이 달궈지면 황병서의 워싱턴행도, 중동만 누비고 있는 케리 미 국무장관의 평양행도 시간 문제다. (…) 농구광인 오바마와 김정은이 1대1 농구를 하는 장면도 헛된 꿈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하다. 2010년부터 남북관계를 꽁꽁 묶어온 5ㆍ24조치를 풀고, 8년간 190만 명의 한국인을 맞았던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 북이 ‘외교적 쿠데타(diplomatic coup)’를 일으킨 만큼 남도 대담하게 화답해야 한다. (…) 개성공단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남북 간 평화와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를 허용하지 않는 5ㆍ24 조치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 (…) 북한 근로자들은 교육을 잘 받아 생산성이 높지만 중국ㆍ베트남 근로자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는다. 그래서 개성공단의 파행으로 인한 손실은 북보다 남이 훨씬 크다. (…) 5ㆍ24조치는 결과적으로 대북제재가 아닌 자해(自害)가 돼 버리고 말았다. 군인과 군함이 아닌 민간인과 상선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바로 평화의 상태다. 통일은 미래의 대박이지만, 평화는 현재의 대박이다. 2000년 올브라이트와 함께 김정일을 방문했던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이 얼마 전에 필자를 찾아왔다. (…) 그는 “미국 정부는 클린턴 정부 이후 14년을 허비했다. 이건 범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칼린은 “김정은은 2012년 4월 첫 연설에서 핵이 아닌 경제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경제발전에 대한 그의 욕구를 지렛대로 삼아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한국이 주도하면 미국도 따라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북 실세 3인방 ‘외교적 쿠데타’ 대처법(중앙일보 기명 칼럼ㆍ이하경 논설주간) ☞ 전문 보기
“북한이 왜 이 시점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ㆍ김양건 노동당 비서를 한국에 보냈는지에 대해서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여러 추론과 희망 섞인 관측들만 난무할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숱한 가설과 풍문, 이념과 정파적 바람이 뒤섞여 있는 온갖 전망과 주장 사이에서 사실(事實)을 먼저 가려내는 일이다. (…)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집권 후 자신의 아버지 김정일이 영화·예술 분야에 몰두했던 것처럼 스포츠에 매달리고 있다. (…)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이 역도와 여자 축구 등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북 선수단의 선전(善戰)에 흥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김정은의 치적(治績)으로 내세울 만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 대표단의 인천 방문은 내부 홍보용 체육 행사 참석이 본래 목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측에 전한 메시지는 일종의 보조(補助) 메뉴였다. 황 일행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 제안을 거절한 것이나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은 것 역시 이런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 북 대표단이 다녀갔지만 정작 남북관계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에 나온 합의는 10월 말~11월 초에 2차 고위급 회담을 갖는다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에선 벌써부터 5ㆍ24 대북(對北)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거나 늦어도 내년 중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 5ㆍ24 제재가 천년만년 지켜야 할 철칙(鐵則)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5ㆍ24를 폐기해 대북 국제 제재의 틀을 무너뜨려야 할 만큼 중대한 변화를 맞은 것인지 되묻고 싶다. 남북관계가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 이런 주장들은 5ㆍ24는 악(惡)이고, 남북 정상회담은 절대 선(善)이라는 희한한 발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5ㆍ24를 부른 것은 북의 천안함 도발이었고,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전진시키기보다는 우리 내부를 극심한 혼란과 갈등 속으로 밀어넣은 측면이 더 강하다. 이것 역시 남북문제를 사실관계와 전후 맥락 등을 엄밀히 따지기보다는 감성과 유행, 이념, 정파적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잘못된 접근이 빚어낸 결과다.”
-對北 정책이 선무당들의 ‘굿판’이 되어선 안 된다(조선일보 기명 칼럼ㆍ박두식 논설위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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