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지식 해박 비산동 '양아치'
징역 5회 수감은 1년이 최장… 누범기간 가중처벌 받을 듯
“참 잘 배우셨네. 내가 경찰조사 많이 받아봤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봐.” 지난달 말 대구 서부경찰서에서 8시간에 걸친 조사가 끝나는 순간 취조받던 피의자 한모(51)씨가 담당 경찰관에게 뱉은 말이다. 느닷없는 칭찬에 이 경찰서 김찬연 형사5팀장은 웃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다고 했다. 김 팀장은 “한씨가 법에 워낙 해박해서 수사의 처음과 끝을 꿰고 있더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상습적으로 동네 다방과 식당 등을 돌며 업주와 손님 등을 폭행하고 영업을 방해한 혐의(상습상해 및 업무방해)로 구속된 한씨는 이미 ‘경찰 가르치는 범인’으로 유명세를 톡톡이 치르고 있었다. 12년 전인 2002년에도 한씨를 같은 혐의로 조사했던 엄홍수 서부경찰서 형사과장은 “당시 한씨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 대전에 있다. 대구에서 조사받기 싫으니 이송신청서 보낼 수 있는 팩스번호 불러달라”며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라며 “당시에도 이미 잦은 경찰조사로 법에 관해 능통했다”라고 말했다.
전과 55범인데도 징역형은 5회, 가장 길었던 복역기간이 1년에 불과한 것이 그의 법지식을 대변하고 있다. 행패를 부리더라도 법에 저촉되기 직전에 발을 빼는 수법으로 공권력을 피해다녔다. 한씨의 활동무대인 서구 비산동 일대 비원지구대는 허구한 날 시비를 거는 한씨 탓에 야간근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했다. 한씨는 경찰관에게 “뇌물 받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며 강짜를 놓거나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지만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만 골라 행패를 부렸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나 모욕죄 등 법의 그물망을 잘도 빠져나갔다.
이날 구속된 한씨는 주로 여성이 운영하는 다방이나 식당 등을 찾아 손님과 주인을 위협하고 시비를 걸었다. 돈을 뺏거나 심한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아 피해정도가 경미하고 보복을 두려워한 피해자들이 신고를 취소, 벌금형이나 훈방 등 처벌에 그쳤다. 경찰 관계자들은 “가벼운 처벌이 한씨를 경찰 선생 노릇하는 동네조폭으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씨도 고생 좀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해죄로 징역을 살다 올 2월 출소한 한씨가 누범기간에 해당돼 형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엄홍수 형사과장은 “한씨가 수십년 범행 경험을 살려 처벌받지 않는 선에서 주민들을 괴롭혔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 서구 비산동 일대 상인 및 주민들은 한씨를 구속한 경찰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배유미기자 yu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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