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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이 제재 피하려 낸 시정안, 창조경제의 성과로 둔갑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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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이 제재 피하려 낸 시정안, 창조경제의 성과로 둔갑한 사연은?

입력
2014.10.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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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조사 받은 SAP 코리아 제재 대신 자진시정안 실행키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청와대에서 방한한 독일 소프업체 SAP의 하쏘 플래트너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청와대에서 방한한 독일 소프업체 SAP의 하쏘 플래트너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불공정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은 외국계 기업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내놓은 자진시정안을 정부가 “창조경제의 성과”라 홍보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특히 청와대, 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치켜세운 내용은 공정위가 그 수용 여부를 심사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와대의 경솔한 행동이 공정위 수용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7일 공정위와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1일 전원회의를 열어 독일 산업용 소프트웨어(SW) 개발업체 SAP의 자회사 SAP코리아의 거래 상 지위남용 행위에 대한 동의의결 이행안을 확정했다. 동의의결이란 불공정거래 혐의로 적발된 업체가 공정위 제재를 받는 대신 자진시정안을 마련해 불공정 사항을 신속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2011년 12월 도입됐다. 올 3월 네이버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첫 적용 대상이 됐고, 이번에 SAP코리아가 외국계 기업으로는 처음 적용을 받았다.

SAP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세계 매출액 23조6,000억원에 달하고, 독일 주식시장 시가총액 1위에 해당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특히 전 세계 비즈니스 SW시장의 여러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 SAP의 자회사 SAP코리아가 지난해 부분 해지 금지 행위, 임의적 계약해지 행위 등 SW 구입자에게 불리한 불공정거래를 한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고, 조사가 끝난 지난해 11월 6일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사실상 불공정 거래를 인정한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위원이 공정위에게서 받은 ‘SAP코리아의 동의의결 확정안’에 따르면, 올 4월 SAP측은 158억7,000만원어치 최신 SW와 현금 3억원을 출연해 공익법인을 세운 뒤 ▦빅데이타 인프라 구축 및 정부 지자체 정책의 효율적 추진 지원 ▦빅데이터 연구원과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 관련 전문가 등 SW산업 인력 공급 ▦디자인싱킹을 활용한 빅데이터 컨설팅 진행과 대학 연계 빅데이터 전문학위 과정 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디자인싱킹은 SAP 창립자이자 경영감독위원회 의장인 하소 플래트너씨가 10여 년 전 미 스탠포드대 데이비드 켈리 교수와 손잡고 개발한 창의적, 혁신적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론이다.

그런데 지난달 3일 플래트너 의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올해 안에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 인근에 220억원 이상을 들여 ‘SAP 디자인싱킹 혁신센터’를 지어 디자인싱킹을 교육하고 성장 가능성 높은 SW 관련 벤처기업과 혁신적 기업가를 양성하겠다며, 올 봄 공정위에 제출한 시정안과 상당 부분 중복되는 내용을 완전히 새로운 투자계획인양 소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SAP는 창조경제 SW 발전의 중요한 파트너”라 치켜세웠고, 미래창조과학부는 즉시 “대한민국의 창조적 인재 양성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며 홍보에 나섰다. 또 청와대 측은 SAP 디자인싱킹 혁신센터를 구글의 서울캠퍼스 등과 함께 언급하며 “박 대통령의 규제혁신 강공이 외국 투자자들 특히 SW 분야 업체들에게 좋은 여건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하는 등 창조경제 활성화의 성과라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문제는 공정위가 디자인싱킹 관련 교육과 전문가 양성 등이 포함된 자진시정안을 심사 중인 상태에서, 청와대, 미래부 등이 마찬가지로 디자인싱킹 관련 교육과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짓겠다는 혁신센터를 치켜세우는 상황이 벌어진 것. 김기식 의원 측은 “설사 공정위가 SAP측의 자진시정안을 부정적으로 판단했어도 청와대가 좋게 평가한 내용이 들어있는 상황에서 그 결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밝혔다.

게다가 미래부는 SAP측이 공정위 자진시정안에 디자인싱킹 관련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공정위 역시 SAP측이 혁신센터를 통해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자신들이 심사 중인 내용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위 측은 뒤늦게 상황 파악에 나섰지만 “SAP측이 자진시정안은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한 것이며 디자인싱킹 혁신 센터와 관련 없다고 밝혀왔다”는 옹색한 해명만 내놓았다. SAP코리아 측도 “공정위에 제출한 시정안과 혁신센터와는 관련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는 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디자인싱킹 내용을 빼버려 의혹을 부추겼다. 공정위 관계자는 7일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고 봐서 제외했다”며 “일부 중복되는 내용이 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SAP코리아의 동의의결안이 신청 11개월이 지나서야 의결됐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공정위에 따르면 해당 업체의 동의의결 신청 후 최대 4,5개월 정도 걸리게 돼 있고, 실제 동의의결을 받은 네이버, 다음의 경우 신청을 받은 지 4개월 뒤 의결됐다. 동의의결이 늦어진 것은 그만큼 공정위가 당초 SAP의 자신심의안에 대해 부정적이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기식 의원은 “창조경제의 뚜렷한 성과가 없자 불공정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는 해외업체가 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을 검증도 없이 대단한 성과라 치켜세우는 일이 벌어졌다”며 “부처간 정보나 의사소통 부재도 이런 어색한 상황을 키우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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