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의결권 예탁원 대리투표 / 형식적 주총 비판에 법 개정 폐지
의결권 제한받는 감사 선임 큰 문제, 당국 전자위임장 도입으로 보완
소액주주 비중이 절반 이상인 코스닥 상장업체 A사는 최근 감사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는데도 새로 감사를 뽑았다. 내년부터 의결권대리행사제도(섀도보팅)가 폐지되면 감사를 선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A사는 “소액주주들 대부분이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는 상황에서 섀도보팅을 폐지하면 감사선임뿐 아니라 정관변경 등 기업경영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며 우려했다.
7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내년 1월 섀도보팅 제도 폐지를 앞두고 기업들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991년 도입된 이 제도는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소액주주들의 투표권을 한국예탁결제원이 의결내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주주들을 대리해 행사할 수 있게 한 것. 증권시장 확대로 소액주주가 늘어나 주총에서 의결정족수 확보가 어려워진 데 따른 임시 조치였다. 현행법상 주총에서 보통안건이 결의되기 위해서는 발행주식총수의 25%이상이 출석해 과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섀도보팅 탓에 최대주주의 뜻에 따라 주총이 형식적으로 진행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지난해 5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내년 1월부터 섀도보팅을 폐지하기로 했다.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줬지만 기업들은 아직까지도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철금속 생산업체 P사는 올 초 이사선임 관련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전 직원을 동원해 소액주주 300여명으로부터 일일이 위임장을 받아왔다. 이 회사 이사는 “소액주주 중에서는 본인이 주식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며 “섀도보팅이 문제가 아니라 소액주주들의 경영무관심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액주주들의 경우 주식보유기간이 6개월 안팎으로 짧고 기업경영보다는 차익실현에 관심이 높아 주총 참여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감사 선임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한다. 감사선임을 못하면 최악의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가 될 위험마저 있다. 현행 상법상 감사 선임 시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 주요주주의 의결권이 보유지분의 3%로 제한된다. 주요주주의 입김을 제한하고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감사 선임을 위해서는 소액주주들이 반드시 주총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감사 선임 시 주요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 상법도 개정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 섀도보팅만 일방적으로 폐지하다 보니 기업들만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긴급히 대책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온라인으로 의결권 대리를 신청하는 전자위임장 권유제도 도입을 입법 예고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도 위임장 제도가 있지만 대면교부나 우편, 이메일만 허용돼 물리적 시간과 비용부담이 크다”며 “전자위임장 도입으로 소액주주들이 간편하게 권리를 위임할 수 있어 섀도보팅 폐지에 따른 보완책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전자투표제가 도입됐지만 이용횟수가 적고, 전자위임장을 도입하더라도 이에 따른 비용부담이 커 활성화하기 어렵다며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최 교수는 “미국과 영국, 일본 등 대다수 국가들이 발행주식총수에 따른 출석률 요건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 관계자는 “섀도보팅 폐지에 따른 기업들의 어려움은 알고 있지만 기업들도 주총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주총 정족수 기준을 발행주식총수로 하고, 감사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일부 제한하는 것은 대주주의 과도한 경영간섭 등을 막기 위한 장치인 만큼 법 개정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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