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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망각의 축제, 씻김의 축제

입력
2014.10.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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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저자인 소설가 김훈씨가 동료 문인들과 함께 3일 저녁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열린 '팽목항, 기다림 문화제'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문인들은 이날 세월호를 주제로 쓴 산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를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연합뉴스
'칼의 노래' 저자인 소설가 김훈씨가 동료 문인들과 함께 3일 저녁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열린 '팽목항, 기다림 문화제'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문인들은 이날 세월호를 주제로 쓴 산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를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연합뉴스

지난주 말 하늘은 정말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고 높았다. 포근한 햇살과 바람도 부드러워 나들이 하기엔 최적의 날씨였다. 개천절과 이어진 연휴로 고속도로는 차량들로 가득 찼고, 놀이공원 등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리고 전국은 온통 축제로 달아올랐다.

서울의 하이서울페스티벌을 필두로 가평 자라섬에선 재즈축제가 진주 남강에선 유등축제가 펼쳐졌다. 송이나 나는 곳에선 송이축제, 메밀꽃과 코스모스, 국화가 핀 곳에선 꽃축제가 열렸다. 김치축제, 한우축제, 오징어축제, 커피축제 등 축제 주제만도 수십 가지였다. 문경찻사발축제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 취소됐던 봄축제들까지 슬그머니 끼어들며 축제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마치 막아놨던 보가 터지듯 온 세상의 축제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축제의 봇물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어쩐지 이젠 세월호를 잊자고 하는 모양 같아서다. 아직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는데, 10명의 실종자는 여전히 차가운 물 속에 있는데 말이다. 지난달 30일 여야가 세월호법 협상을 극적 타결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조사 범위, 특별검사 추천 단계에서 유가족의 참여 여부 등 풀어야 할 난제는 여전하다.

물론 축제 자체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참척의 슬픔을 이고 있는 유족에 대한 시선이 급격히 냉담해지고 있는 시점과 이번 축제들이 교묘히 맞아떨어졌기에 하는 소리다.

지난해 출간된 마거릿 헤퍼넌의 ‘의도적 눈감기’에 따르면 사람들은 마주하기에 너무도 고통스럽고 두려운 진실일 경우 의도적으로 현실을 부정한다고 한다.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감추듯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뇌가 갈등을 회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으로, 맞닥뜨리기 싫은 문제에 대해 눈을 감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의 뇌리 속에도 세월호에 대한 그런 회피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기 때문에 이런 축제에 더욱 열광하고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전국의 축제장으로 몰려가던 3일, 시민 1,000여명은 버스를 나눠 타고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 버스 중 한 대엔 소설가 김훈씨를 포함해 20여명의 문인들이 탔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동참한 문인들은 팽목항에서 유족들을 만나 함께 눈물을 흘렸다.

문인들의 방문을 이끈 김훈씨는 진도와의 인연이 깊다. 그의 역작 ‘칼의 노래’가 나온 2001년, 그가 진도를 노래한 ‘원형의 섬 진도’란 책도 함께 출간됐다. 그가 맑고 순한 땅이라 한 진도엔 씻김굿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장례 풍습이 있다. 씻김굿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극락에 가도록 인도하는 무제(巫祭)이다. 춤과 노래로 신에게 빌고, 춤과 노래로 유족을 위로한다. 출상 전날 슬픔에 절은 상주를 위해 펼치는 소극 다시래기 등 통곡 대신 소리와 춤, 웃음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씻김굿은 산 자가 죽은 자의 원한과 슬픔과 죄업을 씻어줌으로써 죽은 자를 죽음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죽은 자에게 죽은 자로서의 위엄과 신성과 평정을 회복하게 한다고 했다. 씻김굿은 그렇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씻기는, 화해의 굿판이라고.

진도는 그렇게 죽음 조차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는 땅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축제들은 의도적 망각일 뿐 ‘씻김’이 아니다.

의도적 눈감기가 우리 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지만, 다행히도 세상엔 우리에게 눈을 감지 말라고 하는 카산드라(그리스 신화 속 예언의 능력을 지닌 트로이의 공주)들이 있다. 세상의 비겁한 압력에 분연히 들고 일어선 자각 있는 지성들이다. 지난 주말 팽목항를 찾았던 1,000명의 시민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앞으로 지난한 과정을 통해 세월호 법이 정해지고, 또 더욱 힘겨운 노력을 통해 세월호의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씻김굿은 그 과정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상이 밝혀지고 난 뒤 우리는 비로소 슬픈 영혼들을 위로하는 씻김의 축제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원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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