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인건비 상승 반사이익… 중국 간 美대기업의 54% 제조업 설비 북미로 U턴 계획
20년 전 북미자유무역협정 효과… 단순조립 넘어 기술력도 급성장
정부도 강력한 개방정책… 에너지산업 8월 외국인 진입 허용

올해 초부터 멕시코에서는 대규모 기업들의 투자 프로젝트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일본의 혼다, 마쓰다, 르노닛산과 독일의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등 모두 세계적인 완성차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공장 건설 계획을 밝혔다. 지난 8월에는 기아자동차도 멕시코 뉴에보 레온주에 투자 진출 발표도 했다. 이 투자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멕시코의 산업은 그간 소형자동차 생산 위주에서 최고급 자동차까지 망라하게 된다. 자동차 산업을 기반으로 멕시코가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는 정보기술(IT) 장치 장착으로 첨단화하면서 이미 단순한 기계 조합을 뛰어 넘었다. 멕시코에서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브랜드가 생산된다는 것은 멕시코 산업이 그간 노동집약형 단순 조립에서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동력은 20년 전 미국, 캐나다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멕시코가 중국에 이어 새로운 제조업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멕시코, 중국 대체 투자지역 급부상
멕시코는 저렴한 인건비와 NAFTA 효과에 힘입어 의류, 신발, 완구 등 보세수출 가공업체 중심으로 제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자동차 및 부품, 가전 등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제조업이 확장돼 가며 제품 경쟁력도 서서히 높아져 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소 침체기를 맞았지만 최근 미국의 셰일가스 효과로 미 제조업 회복이 예상되면서 그런 장점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미국이 제조업 강국이 되면 그 효과가 멕시코로 흘러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넘치는 분위기다.
제너럴일렉트릭(GE), 포드, 월풀 등 미국 대기업들은 최근 중국에 있는 생산공장 일부를 다시 미국이나 멕시코로 이전하려 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줄줄이 몰려갔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중국의 인건비가 연평균 15~20%씩 치솟으며 제조단가가 높아지자 이들 기업 중 일부가 중국에서 다시 미국이나 멕시코로 되돌아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멕시코개발연구소(CIDAC)의 2014년 발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이 자료에 따르면 그 동안 멕시코에 투자한 기업들이 중국으로 옮겨가는 제조업 이탈 현상을 보여왔지만 2010년부터 이런 현상이 역전되고 있다. 중국의 가파른 임금 및 위안화 가치 상승과 늘어나는 수송ㆍ재고비 부담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로 재투자할 경우 생산단가를 5~20%까지 인하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임금 수준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는데 비해 멕시코는 2000년 이후 연간 임금 인상 상승률이 0.7~1%에 그쳤다. 멕시코 폐소화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5% 평가절하됐다.
멕시코의 우호적인 투자 여건을 주시하는 미국 경제계도 멕시코의 제조업 부상을 눈여겨보고 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중국으로 간 미국 대기업의 54%가 제조업 설비를 중국에서 북미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21% 정도는 향후 2년 내 북미로 이전할 계획이다. 이는 2020년까지 약 1,200억달러의 신규 투자가 북미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 경우 상당수 미국기업들은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멕시코 생산품은 미국시장으로 2일에서 1주일 이내로 육상 운송이 가능해 운송비 절감 효과가 탁월하다. 미국에서는 이를 신속한 대외구매(Quick Sourcing)라고 표현한다. 멕시코의 제조업 강국 부상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실제로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폐냐 니에토 정부 투자 유치 위해 법 바꿔
2012년 12월 취임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강력한 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외국 기업에게 멕시코의 투자 환경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폐냐 니에토 정부는 70년간 국유화 조치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해 오던 에너지 개혁입법을 지난 8월 모두 마무리했다. 핵심은 멕시코의 석유 및 가스 자원을 외국인에게도 개방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텍사스주와 연결된 멕시코만 심해의 유전 탐사ㆍ채굴까지 가능해지는 등 에너지분야 전반에 투자가 전망된다. 멕시코 정부는 내년부터 4년 간 석유 탐사 및 채굴 분야에서 164억달러의 투자를 기대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또 경쟁 촉진을 통해 통신 분야도 개방을 예고하고 있다. 개방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데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올해 2월 멕시코신용등급을 ‘Baa1’에서 ‘A3’로 높임으로써 중남미에서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 신용등급이 ‘A’대로 진입한 국가가 됐다.
멕시코는 또 미국시장을 겨냥해 ‘제조, 보세 임가공 및 수출서비스 진흥 프로그램’(IMMEX)도 가동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멕시코 노동력을 이용한 수출상품 제조지원 사업으로 멕시코의 초기 제조업 육성에 기여했다. 장비, 부품, 소재 등을 일시 수입해 관세 및 부가가치세 납부 시기를 연기할 수 있어 그간 멕시코의 미국시장 인접성을 활용하려는 기업 유치에 기여해왔다. 멕시코는 IMMEX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그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산업, 항공산업, 석유ㆍ가스 산업을 새로운 주력 분야로 키우려 하고 있다. 루이스 바데가라이 재무장관은 지난 2월 미 경제전문채널 CNBC와의 회견에서 “멕시코가 강력한 성장세와 제조업 붐, 외국인 투자 개방에 힘입어 중국에 버금가는 투자처로 부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우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멕시코 경제는 정체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초 세제개혁에 따른 세금 인상으로 상반기 국내소비마저 저조하다. 수출산업 분야만 호황 국면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가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1억1,000만명의 소비시장인 내수산업을 활성화하고 내실 있는 제조업 성장을 위한 고급 인력 양성 시스템도 뒤따라야 한다. 멕시코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혁신과 생산성 향상도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마약 카르텔의 활동과 치안 불안, 도로 항만 등 전반적인 인프라 미비, 미국 대비 고가의 에너지 가격, 숙련공 부족 등도 중장기에 걸쳐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근대까지 중남미 중심국가
하지만 멕시코는 주변국과 FTA를 확장하면서 제조업 강자로 부상할 기회를 개척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을 뿐 아니라 2012년 6월 콜롬비아, 페루 및 칠레와 태평양동맹을 체결해 글로벌 시장 접근성을 더 키웠다. 지난 6월에는 태평양동맹 의장국이 됐다. 또 그간 미국 위주의 멕시코 경제를 중남미 지역으로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한국 호주 인도네시아 터키 등이 참석하는 중견국가 협력체(MIKTA)에도 참여 중이다.
멕시코는 지정학적 장점과 풍부한 시장, 저렴한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계의 공장들이 몰려 있는 중국을 대신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멕시코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믿을 요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근대 중국과 멕시코가 지역의 경제적 강자였다는 유사성이 세계 공장으로서 멕시코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수백 년 간 최대 국가를 형성해 발달해 온 것처럼, 멕시코는 미주 대륙의 강자였다. 스페인이 중남미 정복을 시작하던 16세기 초 멕시코에 도달한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현 멕시코시티)이 당시 유럽 최대도시였던 스페인 세비야보다 더 크고 웅대했다고 기록했다. 멕시코는 현대 이전에는 세계의 중심국가 중 하나였던 것이다.
지금 멕시코는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 있다. 제조업은 수출주도형에서 내수가 가미된 복합형 제조업 모델로 변신 중이다. 일부 자동차 기업은 엔지니어링ㆍ디자인센터도 운영 중이다. 전자산업도 평면TV, 백색가전 등에서 수출산업으로 발달해 가고 있다. 첨단 항공우주산업은 미국 국경지역인 바하 칼리 포르니아 등에 클러스터(종합단지)를 조성해 성장 중에 있다. 북미ㆍ중남미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이 멕시코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김건영 코트라 중남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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