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더비 등 해외 경매서 인정받는데 국내선 가치 잘 몰라 안타까웠죠"
15세기 초 조선에서 아프리카 대륙까지 그린 세계지도가 있었다면? 더구나 그 시기가 1402년 태종 2년으로 서양의 아프리카 남단 탐험보다 약 1세기 빨랐다면? 이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지도라면? 모두 입이 떡 벌어질만한 기록이다. 그러나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나라 지도의 역사다.
‘계간 고지도’가 이런 기록을 가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창간호에서 소개했다. ‘계간 고지도’는 옛 지도를 다루는 대중 잡지다. 국내에서 이런 잡지는 처음이다.
이 책을 만든 세계고지도학회 회원 김태진(49) 티메카코리아 대표는 “한국의 고지도는 기술적으로도 서양의 것에 뒤지지 않고 역사적인 가치도 크다”며 “박물관에만 있기 일쑤인 고지도를 대중에게 좀더 쉽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만 해도 그렇다. 1400년대 조선에서 어떻게 지구 건너편의 아프리카까지 그려 넣은 지도를 만들 수 있었을까. 김 대표는 “권근, 이회 등이 중국과 일본을 오가던 사신들이 들여온 지도들에 이회의 팔도도를 합쳐 완성한 것”이라며 “아프리카뿐 아니라 한반도 역시 정교하게 그린 이 훌륭한 지도를 대중은 잘 몰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도의 모사 축쇄본을 ‘계간 고지도’ 창간호 부록으로 마련했다.
지금에야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우기지만, 고지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735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이 만든 ‘조선왕국전도’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한 최초의 서양 지도다. 표기는 정산도, 간산도, 천산도 등으로 불렸던 독도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Chiang san tau’로 했다. 영국의 로리 위틀이 1794년 제작한 일본지도는 한반도를 ‘Corea’로, 동해를 ‘Corean Sea’로 적었다. 김 대표는 “무작정 독도, 동해가 우리 것이라고 할 게 아니라 일찍이 한국의 영토, 영해로 표기한 서양 지도가 있었음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고지도는 예술적인 성격도 있어 흥미롭다. 김 대표는 “특이하게 도화원의 화원들이 그렸기 때문”이라며 “학술 자료뿐 아니라 그림으로도 볼 수 있어 외국에서 호평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외국 학술서적 인터넷서점을 운영하는 김 대표가 고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안타까움 때문이다. 우리 고지도가 외국에서 더 많이 각광 받고 매매돼서다. 그는 “소더비 등의 경매에서 우리나라 고지도들이 유통이 되는 걸 보고 무척 아까웠다”며 “대부분 신미양요나 병인양요 때 빠져나간 고지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서 공부를 하면서 고지도를 사 모은 지 7년, 현재 김씨는 고지도 1,00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실제 지도를 보여주며 가르쳐야 하는데 이미지만 갖고 공부한다”는 대학 교수의 한탄을 듣고 갖고 있던 고지도들을 빌려준 적도 있다.
김 대표는 “외국 정부, 특히 일본은 자국의 지도를 정책적으로 수집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열심”이라며 “한국 정부도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고지도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대내외에 사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간 고지도’가 한글과 영문 글을 함께 싣는 이유도 우리 고지도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서다. 초판 1,500부 가운데 300부는 영국 대영도서관, 미국 의회도서관 등 15개국의 기관이나 개인이 구독한다. 김 대표는 “이 책을 ‘한국 고지도의 내셔널지오그래픽’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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