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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역(逆) 변양호 신드롬

입력
2014.10.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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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 신드롬’이란 걸 들어봤을 것이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이후 공무원들이 논쟁적인 사안이나 책임질만한 결정을 회피하고 납작 엎드리게 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4년이 훨씬 넘는 긴 법적 공방 끝에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신드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지난해 펴낸 책 ‘신드롬’에서 “사무실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소송 관련 서류도 이제는 모두 정리할 것이다. 하지만 공직자 사회가 아직도 ‘변양호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라고 적었다.

공감한다. 사실 가슴 아프기로 치면 국민들이 훨씬 더 하다. 정말 변양호 사건의 후유증 때문인 건지, 아니면 괜히 거기에 기대는 건지 아리송하긴 한데, 어쨌든 정책 판단에 대해 법적인 단죄를 하겠다고 무리한 수사권을 동원했던 검찰은 비판을 받아 마땅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변양호 신드롬’ 때문에 피해를 입는 건 국민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변양호 신드롬’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정책 당국자로서 법적인 책임은 물론 도의적인 책임조차도 안중에 없이 독단과 독선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인데,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역(逆) 변양호 신드롬’ 쯤으로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변양호 신드롬’은 공무원들이 책임질 일을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문제를 부르지만, ‘역 변양호 신드롬’은 책임지지도 못할 엄청난 일만 벌려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그 피해가 훨씬 더 막대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목도하고 있다. 경고등이 연신 깜박대는 나라 재정이 그렇다. 해마다 10조원 가까운 세수 펑크가 발생하고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거기엔 MB 정부의 부자 감세가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는 등 기업들의 세 부담이 크게 줄었으니까 거둬들이는 세금이 감소하는 건 당연하다. 당시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세금을 낮춰주면 투자가 늘어나 세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자신하며 감세를 밀어붙였지만 아직까지 투자가 늘었다는 소식은 없다. 오죽했으면 강 전 장관만큼이나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법인세를 3%포인트 깎아줬는데도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고 쌓아두고 있으니 그 돈을 쓰지 않으면 세금을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겠는가 말이다.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는 건 너무너무 힘든 게 세금이다. 그래서 당시의 부자 감세 정책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게 될 것임에도 어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국민들이 그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떠민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쪼갰다 붙이기도 마찬가지다. MB 정부에서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겠다며 산은금융지주-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로 갈갈이 쪼개놓더니, 불과 4년 만에 민영화는 백지화되고 다시 하나로 붙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수천억원의 헛돈과 헛시간이 낭비된 건 물론이다. 그런데도 당시 산업은행 분리를 주도했던 한 인사는 요즘 너무나 태연하게 연예인 뺨 칠 정도로 케이블TV를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하고 있을 뿐이다.

예측하지 못한 실패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조금의 부작용 없는 정책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까지 모두 책임지라고 한다면 ‘변양호 신드롬’이 더 횡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자 감세나 산업은행 민영화 모두 당시 상당히 거센 반발이 있었던 사안이었다. 그때는 온갖 논리를 들이대며 정면 돌파하더니,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현실화된 지금은 입을 싹 닫는 게 용인되는 현실이 이상할 뿐이다.

현재의 정책 당국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이라는 미명 아래 불도저 식으로 각종 정책을 쏟아내는 걸 보면서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진다. 이제 이 정부에게 남은 시간은 3년여. “어차피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그건 다음 정부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밀어 붙이는 정책은 정말 없는지 자문해 봤으면 한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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