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감정이다.”
지난 2008년 세계 5대 자동차 전시회 중 하나인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랜드로버가 콘셉트카 ‘LRX’를 공개하자 완성차 업계와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변화”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직선이 강조된 기존 랜드로버 차량들이 다분히 마초적이었다면 LRX는 곡선의 멋을 살린 날렵한 형상이었다.
이후 콘셉트카와 거의 동일하게 출시된 쿠페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단숨에 인기 차량으로 떠올랐다. 강력한 성능과 내구성으로 60년 넘게 4륜 구동의 지존으로 군림해 온 랜드로버가 새로운 디자인이란 날개를 달고 전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보크가 2012년 25개국 자동차전문기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을 수상하면서 떠오른 인물이 랜드로버의 제리 맥거번(사진) 디자인 총괄 디렉터다.
프랑스 파리모터쇼가 개막한 지난 2일(현지시간)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만난 맥거번 디렉터는 “전통을 고집하지 않고 소비자 지향적으로 접근한 디자인이 이보크의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딱딱한 기존 랜드로버의 외형에 감성을 더한 것이 성공의 이유였다는 설명이다. 그는 “디자인은 소비자들이 차와 감정적 교감을 느끼며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이보크는 이런 디자인 철학이 제대로 빛을 발한 사례”라고 역설했다.
랜드로버는 이번 모터쇼에서 2,000㏄ 엔진을 얹은 콤팩트 SUV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역시 제리 맥거번의 작품이다. 그는 “이보크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면 앞으로 나의 임무는 랜드로버만의 패밀리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디자인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까지 오른 맥거번이지만 최근 출시되는 차량들의 뛰어난 디자인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디자인 수준이 높은 차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며 “요즘 아우디가 보여주는 비주얼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2004년 랜드로버 디자인팀에 합류하기 전 크라이슬러와 포드 등에서도 활약하며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속속들이 파악한 그는 한국의 자동차가 진화 중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어떤 문화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한국 자동차는 현재 자신에게 적합한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파리=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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