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버의 M&A
"여러 기업문화를 통합해 시너지, 기업전략ㆍ비전ㆍ혁신이 성공요소"
샤오미의 벤치마킹
"어떤 경우도 원가는 안 올린다" 先주문 後제작으로 재고 최소화
“중국의 새로운 과학 기술 혁명과 산업 혁신이 지금 막 일어나고 있다. 기회는 조금만 늦어도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위기 의식을 갖고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중국의 최첨단 산업 중심지 중국의 최첨단 산업 중심지로, 2만 개의 최첨단 기업이 몰려 중관춘이 2020년까지 전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과학 기술 혁신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지난 해 9월30일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7명의 상무위원을 포함한 중국 공산당 핵심 정치국 위원 25명은 ‘중국판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을 방문, 차세대 기술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중국식 혁신을 뜻하는 '창신(創新)’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이 자리엔 중국을 대표하는 '빅3' IT 대표들이 참석해 시 주석을 맞았다. 세계 최대 PC제조업체인 레노버(중국명 롄샹ㆍ聯想) 창립자인 류촨즈 회장, 중국 최대 검색 엔진인 바이두(百度)의 리옌훙 회장, 그리고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小米)의 레이쥔 회장. 이들 3인방은 중국의 산업 혁신 방안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쏟아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돼 샤오미는 2분기(4~6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영원한 강자로만 여겨져온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창업한 지 고작 3년7개월, '짝퉁 애플' '잡스(애플 창업주)의 옷차림까지 흉내 낸다'는 비아냥을 받았던 샤오미는 보란 듯이 정상등극을 자축했다.
돌풍은 레노버도 마찬가지. IBM의 PC사업부문을 사들이며 세계 PC시장을 평정했던 레노버는 올해 초 구글로부터 '휴대폰의 원조'인 모토로라를 인수하며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말 그대로‘용등사해(龍騰四海ㆍ용이 세계로 뛰어오른다)’였다.
버린 것을 새 것으로: 레노버
미국 IBM은 세계에서 개인용컴퓨터를 가장 먼저 만든 기업. 하지만 범용 PC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 IT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하며 태생이나 다름없는 PC부문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걸 사들인 곳이 레노버였다. 레노버는 2005년 IBM의 PC사업부문을 사들인 뒤, 마침내 지난해 HP를 누르고 세계PC시장을 평정하는데 성공했다.
모토로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휴대폰을 만든 기업. 모바일의 원조기업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구글에 팔렸지만, 구글 역시 모토로라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매각을 결정했다. 올 초 레노버는 구글로부터 모토로라를 사들였다.
얼핏 보면 레노버는 글로벌 IT기업들이 버린 사업을 사들이는 '청소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레노버는 이 사양산업, 범용제품들을 특유의 가격경쟁력으로 재무장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천슈뚱(46ㆍ사진 위) 레노버그룹 수석 부사장 겸 중국 및 아시아태평양 신흥시장 총괄 사장은 베이징 중관춘 인근 상띠 롄샹 본사에서 가진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PC에 이어 스마트폰 역시 성공을 장담했다. 그는 “중국은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스마트폰 격전지로 레노버는 보급형 시장에서 가진 강점을 살려 이제 프리미엄 시장으로 타깃을 돌리고 있다”면서 “지난달 IFA에서 선 보인 VIVE X2는 세계 최초 멀티 레이어 디자인의 스마트폰으로 2,499위안(43만5,000원)대의 저렴하면서도 최고의 성능을 탑재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아울러 “레노버 스마트폰은 지난 2분기 출하량이 동남아 시장에서 약 4배, 동유럽에서 6배나 급등하며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30개 국가에서 현재 팔리고 있다”며 “모토로라 인수가 완료되면 모토 브랜드로 한국을 포함 선진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라고 야심 찬 구상을 밝혔다. 레노버는 PC조립사업에서 다진 부품의 집성(集成)역량과 소프트웨어 개발 및 운용 능력을 인정 받아, 중국 토종 기업 중 소비자 마케팅 능력이 가장 두드러진 업체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인수 합병(M&A)을 통한 레노버의 성장전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1일 IBM x86 서버 사업부문을 최종 인수했고, 앞서 지난 해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스톤웨어와 브라질 소비자가전업체인 CCE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 EMC, 일본 NEC 등과 각각 합작사업을 운용하며 베이징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모리스빌에 두 개의 본부, 전 세계 160여 개 국가에 5만4,000명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젠 전체 매출의 60%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어엿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천 부사장은 레노버만의 성공전략, 즉 '레노버 웨이'를 강조했다. 그는 "기업 인수를 통해 여러 다른 기업 문화를 하나로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레노버가 축적한 인수 관리 프로세스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레노버 웨이’로 통합하는 과정은 기업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성공 요인”이라고 말다.
천 부사장은 레노버가 인수한 것들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PC만해도 얼마든지 혁신을 통해 발전가능성이 있으며, 모바일 시대가 온다 해도 PC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에는 기기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젠 기기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이용된다”며 “외부에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집에선 아직 PC를, 게임과 영화를 볼 땐 태블릿을 이용한다. 우리는 이를 ‘포스트 PC 시대’라고 부르지 않고 ‘PC+ 시대’라고 정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중국 전체 가정의 30% 정도가 PC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제 여건이 나아질수록 PC 보급률은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며“우린 이 시장의 미래 가능성을 더욱 키워갈 것이고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적인 분야에도 투자를 늘려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태블릿과 스마트폰 사용의 증가로 PC시장의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레노버는 지난 2분기 선진국 시장에서 10% 이상의 성장을 이끌었다.
레노버는 사물 인터넷 개발에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대기 오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으로 전원을 작동하는 스마트 공기청정기를 개발했고, 중관춘의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3개사와는 스마트 공유기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공유기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스마트폰으로 작동하게 하는 등 스마트홈의 중추 역할을 지원한다. 천 부사장은 “스마트 공유기는 어제 하루에만 10만대가 판매될 정도로 중국에선 혁신적인 제품”이라며 “레노버는 자체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지만 중관춘의 수많은 스타트업들과 협력을 통해 신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토종 IT 기업들의 약진 배경과 힘에 대해 천 부사장은 “중국 소비자들이 깨어나면서 점점 더 똑똑해 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이젠 단지 프로모션만으로 구매력을 높일 수 없고 소비자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원하는지를, 중국 기업들은 직접 소통하면서 그 의견을 발 빠르게 제품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방을 넘어: 샤오미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샤오미 본사 1층. 애플스토어를 연상시키는 체험관‘샤오미즈자(小米之家)’에는 비가 내린 평일 오후에도 20대 젊은 고객들로 붐볐다. 이들은 샤오미의 최신 전략폰인 Mi4와 태블릿 Mi패드 등을 이리저리 작동해보고 있었다. 동북지방 출신의 양링(27)씨는 “샤오미 애플리케이션은 아이폰과 비슷하지만 공짜로 온라인 동영상과 음악을 모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등 다채로운 구성이 마음에 든다”며 “품질과 디자인도 수준급인 데다 가격마저 삼성폰의 절반이라니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훠즌자스’(貨眞價實: 품질 좋고 가격도 저렴한 제품). 샤오미가 창업 3년여 만에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한 비결이다. 샤오미 공동 창업자인 리완챵(37ㆍ사진 아래) 샤오미왕(網) 부사장은 "중국의 최고 중의약방인 통른탕(同仁堂)은 약재 비용이 아무리 비싸고 제조 과정이 복잡하더라도 환자들을 생각해 원가를 높이는 경우는 없다. 샤오미의 사업 철학도 그렇다.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품질 좋은 제품을 구입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재미있게 즐기며 샤오미를 친구 삼아 미펀(米粉: 샤오미 팬덤)으로 남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샤오미는 작은 식당과 같다. 고객들이 싼 가격에 맛있게 음식을 먹고 만족해 단골이 돼 정성껏 팁을 주면 그것이 우리의 서비스를 위한 최상의 댓가”라며 “어떤 경우에도 원가는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샤오미 스마트폰은 첫 출시 때부터 1,999위안(약 33만원)을 고수하고 있다.
레노버가 인수를 통해 성장했다면, 샤오미는 모방을 통해 성장했다. 레노버가 거금을 들여 IBM PC사업 부문과 모토로라를 인수한 방식과는 달리, 샤오미는 애플 선진 기업들의 사업 성공 모델을 자신의 방식으로 철저히 벤치마킹해 중국식 혁신의 새로운 모델로 체계화했다. 단순한 배끼기에 그쳤다면 '짝퉁'으로 남았겠지만, 모방에 창의를 덧입힘으로써 샤오미의 성공신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샤오미의 전략엔 애플과 구글, 아마존, 델 등 성공한 IT기업들의 모델들이 모두 들어있다. 예컨대 샤오미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로 플랫폼을 장악했듯 자체 개발한 MIUI를 플랫폼으로 자신이 판매하는 핸드폰에 탑재, 유료게임 등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난해에만 9억8,648만위안(약 1,6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 상반기 앱 서비스를 통해 거둔 서비스료 중 앱 개발자들에게 지급된 금액만 1억7,400만위안(약 300억원)에 달한다. 샤오미는 휴대폰 제조업체가 아닌 한 마디로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얘기다.
또 델 컴퓨터와 같이 ‘선 주문 후 제작’ 방식으로 재고를 최소화하는가 하면, 단말기 제작은 아이폰처럼 아웃소싱을 통해 폭스콘이 조립 과정을 담당한다. 판매는 아마존 방식을 채택, 온라인 판매로만 이뤄져 유통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리 부사장은 “휴대폰 사양에 대한 개발 분야에서만 혁신이 이뤄진다면 샤오미는 단순히 단말기 업체에 머물 것”이라면서“샤오미가 추구하는 혁신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자 상거래 등을 아우르는 전 분야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비로소 다미(大米)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샤오미의 사업모델이 성과를 높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사용자인 열광 팬인 '파샤오요우(發燒友)'의 뜨거운 참여다. 샤오미는 매주 금요일마다 자사의 홈페이지인 샤오미왕에 올라온 고객들의 문제 지적과 개선 의견들을 취합해 한 번씩 플랫폼인 MIUI 업데이트를 한다. 설계나 연구개발 과제, 디자인 등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으면 고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투표를 해 그 결과를 업데이트 과정에 즉각 반영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취향과 기호, 의견이 반영된 맞춤형 휴대폰 구입에 샤오미 팬들은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최근 샤오미 브랜드의 성공 비결을 소개한 <참여감(參與感): 샤오미의 구전 마케팅 핸드북>이란 책을 낸 리 부사장은 “샤오미 마스코트인 토끼 인형이 20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끄는 것은 광고를 해서가 아니라 사용자의 직접 참여, 즉 그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샤오미에 대한 애정과 관심 때문”이라며 “그 입소문이 퍼져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더 많은 고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샤오미의 구전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과제에 대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선 더 많은 글로벌 인재가 필요하고 시장의 요구와 소비자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장학만 선임기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