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 게임 폐막일이자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10ㆍ4선언’채택 7주년인 4일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 정권의 2인자 격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비서 겸 국가체육위원회지도위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 3인이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남한을 전격 방문한 것이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대리하는 북 정권 핵심 실세들이다.
이들은 이날 우리측 김관진 청와대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장관 등과 오찬 회담을 갖고 우리측이 제안한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우리측이 원하는 시기에 갖자고 밝혔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이들은 또 정홍원 국무총리와 환담한 데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등 여야 의원 10명과도 만났다.
특히 황 총정치국장은 정 총리에게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가는데 성과가 많다”며 “소통을 좀 더 잘하고,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제안했다. 정 총리는 적극 공감을 표시하며 “같은 뜻을 갖고 헤어지니 기분이 좋다, 남북 간에 운동경기를 많이 해서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불과 하루 이틀 전까지도 북측은 남측 북한 민주화 운동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 우리 정부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 등에 강력 반발하며 지난 8월 우리측의 2차 남북고위급 접촉 제안을 겨냥해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 등을 통해 북한에 핵 포기 및 인권개선을 압박한 데 대해 극악한 표현을 동원해 가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비춰 북한 핵심 실세들의 전격 방문과 제2차 남북고위급 회담 수락 등 북측의 적극적 행보는 남북대화 노력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온 우리조차 어리둥절하게 한다. 북 대표단 일행은 김 제1위원장의 구체적 메시지를 담은 친서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황 총정치국장은 우리측과의 오찬회담에서 박 대통령에게 전하는 김 제1위원장의 ‘따뜻한 인사말’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물론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북한 팀이 선전한 것을 계기로 한 ‘전시성 이벤트’색채가 짙은 황 총정치국장 일행의 전격 방문 하나만으로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점치는 것은 섣부르다. 북한의 핵ㆍ경제 병진노선, 북한인권 문제, 5ㆍ24 조치 해제 및 금강산관광 재개문제, 남측 북한민주화 운동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 등 언제든 찬물을 끼얹을 난제가 산적한 게 현실이다. 북한의 진정한 의도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모처럼 반전 기회가 찾아온 것은 분명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박근혜 정부가 임기 중반으로 넘어가 대북정책 동력이 크게 떨어진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른 한국경제의 경쟁력 약화 등으로 ‘대한민국호’의 앞날이 걱정스러운 상황이고, 유일한 돌파구가 북한과 북방 및 유라시아에 있다는 것은 이미 국민의 상식이다.
따라서 경계와 우려를 완전히 풀 수는 없더라도 모처럼의 기회를 살려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그 동안 다듬어 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이 공허한 구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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