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간척지 조성하려다 오폐수 처리 못해 '환경 재앙'
담수호 포기하자 되살아나 원앙·고라니·참게 등 서식
市 "람사르습지 등록 추진"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여기저기 새들이 한가로이 노닌다. 아이와 함께 온 엄마의 손길은 가을과 아이를 함께 사진에 담으려 분주하지만 아이의 관심은 온통 새뿐이다.
한가로운 가을 풍경을 곳곳에서 만끽할 수 있는 이곳은 경기 안산 시화호 갈대습지공원이다. 5일 둘러본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로까지 불렸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야생 조류 천국이자 생태계의 보고였다.
습지공원 관리사무소 옆 갈대습지에서 정화된 물이 시화호로 빠져나가는 배수로 양쪽 가장자리에는 습지로 올라가려는 물고기들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떼지어 있었다. 그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백로, 왜가리 등 10여 마리가 몰려있다. 배수로 주변에 걸쳐놓은 각목과 밧줄에는 어린 참게들이 매달려 기어오르고 있다. 참게는 지난해부터 갈대 습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탐방로를 따라 습지를 돌아보는 동안 주변 물속에는 숭어, 잉어, 붕어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메기, 동자개, 뱀장어 등 토종어종과 배스, 블루길 등 외래어종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안산시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시화호의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원앙, 황조롱이, 저어새, 참매 등 천연기념물 11종과 멸종위기종 9종 등 총 111종 2,929개체의 조류가 관찰됐고 멸종위기종 2급인 맹꽁이, 금개구리, 삵을 비롯 고라니, 너구리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시화호 남측 안산시 대부동과 화성시 송산면 일대에 자리잡은 대송단지 자연습지에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백로와 노랑부리저어새 등 천연기념물 15종을 포함 129종 18만5,704개체가 관찰됐다.
하지만 꼭 20년 전인 1994년에 태어난 안산 시화호의 초기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죽음의 호수’ ‘환경 재앙의 대명사’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 다녔다.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당시 시화호에서 바닷물을 빼낸 뒤 담수호로 만들어 간척지에 조성될 농지와 산업단지의 용수원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상류에서 흘러드는 오폐수 처리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방조제부터 쌓았던 탓에 시화호는 불과 2년 만에 시커멓게 변했다.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이 20ppm으로 농업용수 기준치(8ppm 이하)를 크게 웃돌았다.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정부는 2001년 농업용수용 담수호를 포기하고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했고 이후 호수가 되살아났다.
‘시화호 환경지킴이’ 최종인(60ㆍ 안산시청)씨는 “죽었던 호수가 되살아나 지금 3급수 수준이지만 강우 초기 빗물에 씻겨 호수로 흘러드는 오염물질을 철저하게 차단하면 수질은 더 좋아질 것”라고 말했다.
안산시는 생태계의 보고가 된 시화호 주변 안산갈대습지공원 103만7,500㎡와 대송단지 일대 441만㎡ 를 습지보호지역과 국제 람사르습지로의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국제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곳은 경남 창녕 우포늪, 전남 신안 장도습지, 순천만 등 19곳으로 모두 자연습지다. 시화호가 등재되면 첫 국내 인공습지가 된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