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누군가 새롭게 떠오르면 어떤 이는 뒤안길에서 저물어간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샛별들이 아시아를 빛냈고, 마지막을 준비했던 별들은 투혼을 불사르며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이하성(20)이 새로운 스타 탄생의 시작을 알렸다. 어린 시절부터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슈 신동’으로 불린 이하성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한국 우슈에 12년 만의 금메달을 안겼다.
고교생 사수 김청용(17ㆍ흥덕고)은 ‘포스트 진종오’시대를 활짝 열어 젖혔다. 남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을 달성했다.
김청용의 스토리는 금메달만큼 가슴 뭉클했다. 3년 전 사격을 시작하도록 허락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4세의 나이로 가장(家長)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아시아 정상에 오른 뒤 곧바로 청주에 자리한 아버지 산소를 찾아 금메달 2개를 묘비에 걸었다.
고교생의 약진은 다른 종목에서도 두드러졌다. 남자 테니스의 정현(18ㆍ삼일공고)은 28년 만의 대회 복식 금메달을 임용규(23ㆍ당진시청)와 합작했다. 지난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윔블던 주니어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정현은 이형택 이후 스타 기근에 시달리던 한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존재 가치를 드높였다. ‘태권 소녀’ 이다빈(18ㆍ효정고)은 여자 62㎏급에서 금빛 발차기를 날렸다. 여고생 골퍼 박결(18ㆍ동일전자고)은 남녀 통틀어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해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지켰다. 남자 다이빙에서는 김영남(18ㆍ인천체고)과 우하람(16ㆍ부산체고)이 싱크로나이즈드 10m 플랫폼에서 호흡을 맞춘 지 1년 만에 역대 최고 성적 은메달을 획득했다.
요트의 박성빈(14ㆍ대천서중)은 중학생 신분으로 금빛 물살을 갈라 인천아시안게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남자 110m 허들의 김병준(23ㆍ포항시청)은 13초43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은메달을 땄고, 여호수아(27ㆍ인천시청)는 남자 2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28년 만에 한국 남자 트랙 단거리 메달을 수확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일본 남자 수영의 하기노 고스케(20)는 최고의 화제를 모은 샛별이다. 하기노는 자유형 200m에서 박태환(25ㆍ인천시청)과 쑨양(23ㆍ중국)보다 빨리 터치패드를 찍은 것은 물론 개인혼영 200m, 개인혼영 400m, 계영 800m까지 석권해 대회 4관왕에 올랐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은퇴 무대로 삼은 베테랑들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엄마 검객’ 남현희(33ㆍ성남시청)는 펜싱 플뢰레 단체전 정상에 올라 아시안게임 4회 연속 금빛 찌르기를 완성했다.
마지막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에 도전했던 여자 핸드볼의 우선희(36ㆍ삼척시청)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대표팀 생활을 해피 엔딩으로 장식했다. 12년간 한국 레슬링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정지현(31ㆍ울산남구청)도 두 아이 ‘아금이(아시안게임 금메달)’, ‘올금이(올림픽 금메달)’와 금메달 약속을 지켰다.
남녀 동반 우승을 일군 농구 대표팀 역시 10년 넘게 태극마크를 단 베테랑들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1998년 방콕 대회부터 5번째 아시안게임에 나선 김주성(35ㆍ동부)은 후배들을 이끌고 침체기에 빠진 남자 농구를 아시아 정상으로 건져냈다. 여자 농구의 이미선(35ㆍ삼성생명) 변연하(34ㆍ국민은행) 신정자(34ㆍKDB생명) 등도 금메달을 손에 넣고 ‘안녕’을 외쳤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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