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이거나 입원 시에는 손톱을 다듬을 여유가 없다. 좀 길어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렇지가 않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더 그렇다. 너무 길게 자라지 않았나, 때가 끼지 않았나 한번쯤 내려다보게 된다. 어쩌다 갈라지거나 거스러미가 일어나면 영 불편해서 손톱깎이를 서둘러 찾게 된다. 요즘에는 손톱을 다듬고 꾸미는 일이 유행이다. 말 그대로 아트 수준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린 것들의 손발톱을 깎아주거나 가끔 부모님의 손발톱을 깎아드리다 보면 어쩐지 마음이 물컹해진다. 어린아이들의 손발톱은 너무 얇아서 손톱가위로도 다듬기가 어렵고, 두터워진데다가 갈라지고 터진 부모님의 손발톱 역시 큰 손톱깎이를 들어도 쉽지 않다. 제 손톱을 스스로 깎기 어려운 부모, 자식들이 주렁주렁 달려서 나의 손발톱을 꾸밀 여유는 내게 없다. 긴 손톱이 불편하기도 하고 꾸밀 만큼 예쁘고 고운 손발을 갖고 있지도 않다.
아직도 학교에서 위생 검사 같은 걸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삼십 센티미터 막대자를 들고 다니던 담임교사들은 손톱이 지저분한 애들의 손등을 짝짝 때렸다. 그때 아이들은 노느라 바쁘고 부모들은 일하느라 바빴겠지. 자신의 손톱을 깎는 일이란 평범한 것에 속하지만 그 평범함이란 것도 쉽지 않으며 평생 가지도 않는다. 가만히 앉아 손발톱을 깎으며 삶의 호흡과 리듬을 가다듬는 일이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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