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표권 확대 운동의 역사에서 1964년은 큰 분수령을 이루는 해이다. 소수계 유권자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수정헌법 24조가 이 무렵 채택됐는데, 그 이전에는 남부 지역의 대다수 주정부는 투표를 하려는 흑인들에게 투표세(Poll Tax)를 내도록 했다. 현재 화폐가치로 20달러 가량을 내야 했던 이 제도는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 백인들이 노예출신 흑인의 참정권을 막으려고 도입한 교묘한 장치에서 비롯됐다.
남북 전쟁 직후에도 모든 선거관련 업무는 주 정부에서 관장하는 것이라, 인종차별적 성향의 백인 유권자 지배하에 놓여있던 미국 남부의 각 주는 ‘문맹 검사’(Literacy Test)와 투표세 제도를 운영했다.
‘문맹 검사’란 적법한 유권자라도 투표를 하려면 정치ㆍ사회 현안에 관한 최소한의 기본 지식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걸 명분으로 시험을 치르게 한 제도다. 투표세는 이미 설명한 대로 돈을 내야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물론 ‘문맹 검사’가 흑인과 백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됐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들은 시험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소위 ‘할아버지 조항’(Grandfather clause)이라는 예외 규정을 만들었다. 노예해방 이전 즉 1866년이나 1867년 이전에 투표권이 있던 자의 후손은 ‘문맹 검사’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텍사스주의 경우에는 멕시코 출신의 이민자에 대한 참정권을 제한하기 위해 이런 제도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후 참정권 확대 운동이 계속되면서 1912년에는 ‘할아버지 조항’이 미 연방 대법원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았으나, 흑인과 유색인종이 폭넓은 투표권을 보장 받은 것은 50년이 더 지난 뒤였다. 일부 남부 주의 경우 ‘문맹 검사’를 구두(口頭) 시험으로 바꿔 백인에게는 쉬운 문제를, 흑인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내는 방식으로 흑인들이 참정권을 공공연하게 방해했다. 이 제도는 1964년 민권법이 제정되면서 없어졌다.
투표세는 수정헌법 24조가 발효된 1964년에야 연방 선거에서 금지됐고, 주 단위 선거에서마저 자취를 감춘 건 1966년 연방 대법원이 위헌판결을 내린 뒤에야 가능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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