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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입력
2014.10.0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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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외곽의 흑인 주민들이 3일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경찰서를 향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퍼거슨=AP연합뉴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외곽의 흑인 주민들이 3일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경찰서를 향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퍼거슨=AP연합뉴스

미국의 백인 경찰이 비무장ㆍ무저항 흑인 소년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뒤 일어난 미주리주 퍼거슨시 시위 사태는 흑인의 인권을 경시하는 미 주류 백인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사건을 좀더 들여다보면 퍼거슨시의 공권력을 장악한 인종 구조에서 묘하게 위화감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퍼거슨시는 전체 인구의 70%가 흑인이다. 하지만 시장을 비롯해 시 의회 의원 6명 중 5명이, 경찰 간부급 53명 중 50명이 백인이다. 흑인 주민들 중에 행정 요직을 맡을 만한 ‘인재’가 적다고 해석할 수 있다 치더라도 좀 지나친 백인 편중이다.

퍼거슨시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공권력을 내맡긴 이 같은 구조가 가능한 것은 흑인들의 낮은 투표율이 결정적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평균 12%에 머무는 흑인 주민 투표율이 시의 행정 권력을 소수 백인에게 내어준 결정적 이유라는 것이다.

퍼거슨시 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의 투표 성향이 낮다. 하지만 흑인들이 원래 정치에 관심 없다고 성급하게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백인들이 유색 인종의 권리행사를 힘들게 하려고 과거부터 만들어 온 수많은 구조적 장애물이 낮은 투표율의 한 가지 원인이라고 민주당 등은 주장한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비슷하지만 미국 선거제도 발전사 역시 소수 주민의 투표권을 제약하는 장애물을 제거해 온 역사다. 여성이나 흑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것도 실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성별ㆍ인종에 따른 차별이 기본적으로 철폐된 이후 최근 수십 년 동안 큰 쟁점은 부재자 혹은 사전투표 문제다. 미국은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유권자(흑인 등 유색인종의 비율이 높다)들의 경우 투표일에도 투표소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전 투표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운동이 계속 되고 있다. 그 결과 1972년 4%에 불과했던 사전 투표 비율은 2004년에는 20%까지, 최근에는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수준까지 늘어났다.

‘투표권 제한’ 공화당이 주도

그런데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원 탈환을 가시권에 두고 있는 미 공화당 주도로 이런 흐름에 역풍이 불고 있다. 특히 공화당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주’로 꼽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웨스트버지니아주 등 격전지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투표권 제한’ 도가 이뤄지고 있다.

뉴욕대 법학과 부설 브레넌센터에 따르면 이들 3개 주를 포함해 총 8개 주에서 최근 사전투표 기간 축소 입법이 성립됐다. 샘 넌 전 상원의원의 딸인 미셸 넌 후보가 민주당 소속으로 나선 조지아주에서는 사전투표 기일이 종전 45일에서 21일로 축소됐고,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도 17일에서 10일로 일주일이나 단축됐다.

민주당 소속의 케이 해건 상원의원이 재선을 노리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민주당 성향이 강한 대학생 표를 둘러싸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사전투표 기간(17일→10일)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주 전역에 산재한 대학 캠퍼스에 사전투표를 위해 기표소를 설치키로 했던 계획이 모두 취소됐다. 민주당 캠프의 모건 잭슨 선거 전략가는 “이런 조치들로 인해 사전투표 참가율이 5~10% 가량 떨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는 현재와 같은 박빙의 선거구도에서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추정의 근거로 2008년 대통령 선거 수치를 제시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는 흑인 유권자들이 사전 투표에 대거 참여한 덕분에 민주당 후보로는 30년만에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승리했지만, 선거 당일 투표에서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 패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로 의심 받고 있는 퍼거슨의 한 피자 가게 앞에서 항의에 나선 흑인과 피자 가게 관계자가 지난달 30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퍼거슨=AP연합뉴스
인종차별로 의심 받고 있는 퍼거슨의 한 피자 가게 앞에서 항의에 나선 흑인과 피자 가게 관계자가 지난달 30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퍼거슨=AP연합뉴스

민주당 “유권자 겁박 마라” 소송

상황이 이쯤 되자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민주ㆍ공화 후보간 송사(訟事) 및 감정대결로까지 치닫고 있다. 민주당 해건 후보는 ‘솜 틸리스 주 하원의장이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세를 만들기 위해 투표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건 후보는 공화당의 처사는 전형적인 ‘유권자 겁박’ 조치라며 선거 쟁점으로 삼는 한편, 연방 정부에 공화당 입법의 무력화를 위한 법적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공화당 측은 자신들의 입법은 투표제한 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사전투표 기간을 적절히 축소해 선거관리 비용을 절감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한다. 틸리스 후보도 “신설된 조항에 따라 사전선거 기일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기표소 일일 운영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총 사전투표 시간은 종전과 동일하게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해건 후보가 ‘유권자 겁박’을 얘기하지만 이는 그가 노스캐롤라이나의 달라진 민심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공화당의 절대적 우세 지역인 텍사스에서 주 의회가 최근 발의한 유권자 신분확인법도 진보진영의 비난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투표 전 신분확인을 위한 신분증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이 법이 시행되면, 그에 상응하는 신분증을 제시할 수 없는 흑인과 히스패닉 출신이 대부분인 저임금 계층에서 120만명 가량의 유권자가 선거 참여기회를 박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우편투표제 도입 등 선거권 확대가 대세

하지만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는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주 같은 지역에서는 선거권 확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사례가 콜로라도주인데 이 곳은 오리건과 워싱턴주에 이어 이번 중간선거부터 전면적인 우편투표제를 실시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민주당 후보인 마크 우달 후보는 재선을 더욱 낙관하는 반면 공화당 진영은 울상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공화당 진영에서는 “제도 변화가 선거 판도를 좌우하지 못할 것”이라면서도 “우편투표를 하면 유권자들이 자신의 투표 행위를 타인에게 보여줄 가능성도 높아지는 만큼 민주적 선거의 핵심 요소인 ‘공정ㆍ비밀’선거에서 멀어진다”고 지적했다.

미국 각 지역에서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정반대 풍경이 펼쳐지는 건 선거관리가 전적으로 주 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11월 첫째 주 다음 화요일’에 치러진다는 규정에 따라 중간선거 날짜(4일)만 같을 뿐 당일 투표시간, 투표방식 등은 천차만별이다. 투표시간의 경우 평균 오전 7시에서 저녁 7시까지 운영하는 게 보통이지만 투표방식은 ▦광학용지투표 ▦일반용지투표 ▦직접전자투표 ▦천공식 투표 ▦기계식 레버장치 투표 등 지역별로 다르다. 심지어 이들 방법을 적절히 혼용하는 곳도 있다. 유권자 신분 확인 수준과 절차도 다르다. 아칸소, 조지아, 텍사스 등 8개주는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워싱턴DC를 포함한 20개주는 신분증 확인절차를 굳이 거치지 않고도 투표할 수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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