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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젠 분노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입력
2014.10.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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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차 합의에 유족들이 반대했다. 야당의 약속과 달랐다는 게 큰 이유였다. 야당은 애초 특별검사후보 추천에 유족이 참여하는 안을 내놓았고, 유족들은 이를 가족 총회에서 투표했다. 여야 협상은 유족이 배제된 안으로 합의됐다. 여야 합의로 특검후보 4인을 추천하는 안이다. 여당이 피해자의 자력구제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해서 이루어진 타협이다. 야당은 특검후보군에 대해 유족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할 것이라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고 봤다. 형식은 새누리당에 주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내용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유족 대표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유족 대표의 완고함에는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에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민관 모두 제대로 역할을 한 곳이 없다. 모든 이가 분노했다. 세월호 협상이 시작되고,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ㆍ기소권 부여 요구가 나왔을 때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화가 가라앉을 때쯤 앞뒤를 잰다. 현실 감각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한다.

유족은 그렇지 못하다. 자식을 허망하게 잃고서 분노를 가라앉힐 부모는 없다. 정부의 무능함이 참사의 주요 원인이 된 마당에 수사권ㆍ기소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으로 책임을 밝히고 처벌을 바랄 것이다. 혁명적 상황이라면 가능한 얘기다. 지금이 그런 때는 아니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데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새누리당도 자기 논리가 있다. 얼토당토않은 논리도 아니다. 그래서 타협이 필요하다.

여야 합의안에 들어있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보자. 17명의 진상조사위원 중 야당과 대한변협을 포함한 범야권 추천인사가 10명이다. 이 가운데 3명은 유족이 추천하는 인사다. 진상조사위도 특별검사와 마찬가지로 사실을 축소ㆍ왜곡해서도 안 되지만, 과장해서도 안 된다. 중립적,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여당이 진상조사위 구성에 유족이 관여하는 것도 피해자의 자력구제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버텼다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진상조사위에서, 여당은 특검에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방식으로 1차 합의가 이루어졌다.

3차 합의가 또 뒤집어질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큰 골격의 합의일 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협상의 격언처럼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달 말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마친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아가 특검후보 선정은 물론 진상조사위원장과 진상조사위원 선정, 청와대ㆍ대통령 조사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얼추 보이는 쟁점만 해도 수두룩하다. 논쟁 지점마다 정치권이 유족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다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유족은 그때마다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여야 협상이 시작되면서 세월호 참사는 정치 문제로 변질됐다. 일반인 유족이 합동분향소에서 영정을 따로 빼는 분열도 여기에 기인한다. 보수단체들은 대리기사 폭행 혐의로 당시의 유족 대표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법원 앞으로 몰려가 구속을 요구했다. 진영 논리는 더 횡행할 것이며 더불어 국민의 피로감, 망각, 분열은 심해질 것이다. 제자를 먼저 구해내다 숨진 고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어머니는 “의롭게 갔으니 그걸로 됐다”고 했고, 아버지는 “죽느니만 못한 삶을 포기한 아들이 자랑스럽네 그려. 그래도 눈물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네”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무고한 희생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살신성인과 그 부모의 의연함마저 지루한 싸움 속에 죄다 변질되고 지워지지 않을지 두렵다.

유족도 지난 5개월을 되돌아보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진상규명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분노는 간직해야 한다. 하지만 진상규명에 빨리 다가가는 데 정작 필요한 것은 여우 같은 지혜다. 박영선 전 야당 원내대표의 말처럼 시간과 함께 증거는 빠르게 사라져 간다. 증인과 참고인의 기억은 흐려지거나 조작되고, 말 맞추기도 늘어난다. 형식과 내용,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현명한 길을 택할 여유를 가지길 권한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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