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지방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왔다. 남도의 너른 들은 노랗게 물들어가기 시작하며 풍성한 수확을 너그럽게 기다리고, 잘 영글어가는 실과들은 비록 이른 한가위 때문에 대목을 놓쳤지만 의연하게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빛에 빛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 넉넉한 풍광에 긴 시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는 세월 붙들어 맬 수는 없는 까닭에 벚나무 가로수들은 이미 절반 이상 잎을 덜어내 조금은 아쉽고 스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바람 불어도 사그락거리는 대숲은 당당해서 그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대나무 숲에 들어서면 금세 속진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바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실감하기에 대숲만한 곳이 있을까? 작은 바람에도 대숲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마 그래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를 퍼뜨린 곳이 대숲이었는지도 모른다. <삼국유사>에 실린 ‘여이설화(驢耳說話)’에 따르면 신라시대 희강왕의 손자였지만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던 화랑 응렴(膺廉)은 헌안왕의 질문에 현명하게 대답함으로써 사위가 되었고, 나중에 왕위를 계승하여 경문왕이 되었다. 경문왕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에 갑자기 그의 귀가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나 오직 왕의 복두장이(예전에 왕이나 벼슬아치가 머리에 쓰던 복두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하던 사람)만은 알고 있었다. 왕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귀를 덮는 모자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경문왕이 실제로 당나귀 귀를 가졌다기보다는 왕위 계승의 정통 적자가 아니라는 열등감, 즉 정통성에 대한 불안을 상징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연히 왕은 자신의 귀에 대해 발설하면 복두장이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는 평생 그 사실을 감히 발설하지 못하다가 죽을 때에 이르러 도림사라는 절의 대밭 속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향하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라고 소리쳤다. 그 뒤부터는 바람이 불면 대밭으로부터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 왕은 이것을 싫어하여 대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하였으나 그 소리는 여전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억눌러도 진실은 끝내 밝혀지는 법이다. 그런데도 듣기 고깝거나 불리하다고 여기는 말을 막으려고 하는 이들이 여전히 설친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 특히 그게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의 문제와 관련되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추거나 왜곡하고 싶어진다. 그가 쥔 막강한 권력은 그런 수단을 제공해줄 수 있고, 그의 권력의 혜택을 받으면서 정통성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한 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똘똘 뭉쳐 방어한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었다는 말을 대통령 스스로 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거니와, 그 말 떨어지기 무섭게 SNS까지 감시하겠다는 지침을 발표하는 권력을 보면 딱하기까지 하다. 다시는 끔찍한 일 반복하지 않도록 하려면 진실을 밝혀내고 책임질 사람에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건 당위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에는 오불관언이고 자기 듣기 싫은 소리는 재갈을 물리겠다는 생각이 21세기 민주국가에서 태연하게 자행되는 것을 보면 아연하다.
대나무가 하늘 높이 자랄 수 있는 건 매듭 때문이다. 만약 대나무의 매듭이 없다면 금세 휘어지고 갈라져서 그렇게 자라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매듭은 성장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성장하기 위한 버팀목을 마련하는 중요한 발판이다. 그런 매듭조차 외면하면서 그저 위로만 뻗어가겠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저 내 갈 길 바쁘다고 매듭 제대로 맺고 풀지 않은 채 가면 처음에는 쑥쑥 자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금세 꺾이고 갈라진다.
대나무를 보면서 배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리 내려도 푸른 잎 의연하게 잃지 않는 대나무 숲에 들어가면 그래서 자신을 겸손하게 바라보고 삶의 군더더기들을 내려놓게 된다. 소나무 잣나무와 더불어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늦게 시듦을, 아니 청청당당(靑靑堂堂)을 대나무에게 배울 일이다. 기와만 푸르다고 늘 푸른 게 아니다. 천천히 걷는 대숲에 가을바람이 가득하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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