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3년은 수입 없어도…" 호기는 첫겨울 넘기면서 불안해져
눈치 9단 아내가 꾸러미 제안
여섯 가구로 시작해 21가구까지...쌀·고구마 등 매달 제철 작물 보내
회원들과 소통·영업은 아내 몫
"지리산 능선이 붉게 물들었어요 맘 옳은 사람도 소 멍에만큼 굽고..."
농장 문을 열면서 노고단 쪽을 바라보니 아직도 물러서지 못한 안개가 지리산을 가로 막고 있었다. 어르신들 말씀이 “안개 낀 날, 중 머리 벗겨진다”는데 설마 이 좋은 가을 날 더워 봤자 얼마나 더울라나 싶었다.
오토바이 들여 놓고, 헬멧 벗고, 집에서 가져 온 음식물 잔반 통을 꺼내려는데 저 윗밭에서 한 아주머니가 하늘을 향해 박수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기도를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윗 마을에 무당이 계셨나?’ 생각하며 무심코 보고 있는데 뭔가가 등을 후려갈겼다. 돌아보니 희동이다. “이런 개......” 입에서 나오려는 욕을 해도 개 입장에서는 손해 볼게 없으니 내 입만 더러워질까 봐 참았다. 근데 가만 보니 자기 똥을 근엄한 자세로 떡~하니 밟고 서 있었다. 혹시나 해서 셔츠를 댕겨 돌려 보니 등에도 같은 색이 칠해져 있다. “지발이, 이눔의 새끼!” 하며 한 대 치려 했지만 여유 있게 피한 뒤 도망간다.
등록은 안 했어도 원래 이름은 ‘희동’인데 하도 지랄 발광을 해서 요즘엔 그렇게 부른다. 지발이 조상 대대로 치면 한 마리쯤 진도에 갔다 왔는지, 옆 동네 형님이 기가 막히게 똑똑한 진돗개라고 해서 데려왔는데 누구도 그렇게 봐주질 않는다. 빠르긴 한데 그저 빠르기만 하다. 프랑스 어떤 아주머니가 “인간을 알면 알수록, 난 더욱 개들을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지만 아직은 내가 인간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마음이 급했다. 이번 달 꾸러미를 보내려면 서둘러 고구마를 캐야 했다. 삽과 호미를 내려놓고, 아침에 장에서 새로 산 ‘오리궁둥이’(쪼그려 앉아 일할 때 엉덩이와 땅을 연결해주는 간이 의자) 고무줄을 다리에 끼고 사타구니까지 올렸다. 새 고무줄이라 그런가 약간 끼는 느낌이었지만 피가 안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호미질을 시작해보니 흙이 돌댕이였다. 좀 가물다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흙이 단단해졌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해야 했다. 호미 들고 탄광일 하는 기분이었다. 고구마 다칠까 봐 세게 내려 치지도 못하고 긁다 쑤시다 하면서 조금씩 해 나갔다. 크고 굵지는 않아도 남들 고구마랑 비슷한 모양으로 나오니 고마웠다.
어느새 해는 중천이고 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님 두상에 화상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한 몸 적시기에는 충분한 땀이 흘렀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보낸다’고 했다는데, 봄 여름 가을 온갖 볕 다 쬐는 입장에서는 그 말도 위로가 되질 않았다. 땀 닦고 멍하니 앉아 노고단 바라보며 쉬고 있는데 얼마 전 라디오에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수록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대학 교수의 연구 결과...” 어쩌구 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일 할 때도 멍하고 쉴 때도 멍하니까 창의성이 얼마나 좋아질까 싶었다. 이렇게 창의력 쌓아가는 사람이 창조경제에 이바지 해야 하는데,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윗 분들만 창조 운운하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너무 바쁘면 도리어 멍해지나?
“얼릉 안 캐고 뭘 멍하니 앉아있는겨!” 장씨 아저씨가 가물어서 일찍 떨어진 단감을 주워 입에 물며 농장으로 들어왔다. “땅이 솔찬히 딱딱헐틴디 잘 나오는가? 내일 비 온다는데 좀 이따 허지” 밭두렁 언저리에 쪼그려 앉으시며 물었다. “꾸러미 보내야 해서 오늘 캐야 돼요.” 답하고 보니 감을 씹으시는 아저씨 티셔츠에도 희동이가 소화시킨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근데 아저씨, 저 웃밭 아주머니 신기(神氣) 있어요? 아침에 뭔 고시래 하듯 손을 휘젓고 그러시던데요.” 여쭤봤다. “고시래? 콩밭에서?” “예, 새도 막 날리면서 춤까지 추시던데요?” 일어서는 아저씨는 감씨를 툭 뱉으시더니 “허어 참, 이 사람이 우리 마누라만큼 멍충하네. 콩밭에서 새 쫓는 거지 무슨 신끼가 어쩌구 고시래가 어쩌구. 농사꾼 될라믄 멀었구만. 아, 커피나 한 잔 줘!”
농막으로 앞장선 아저씨는 “농사 그냥 재미로 혀. 죽을똥 살똥 허덜 말고. 자네가 그렇게 농사짓는지 받아 묵는 사람들은 안당가?” 하며 “유기농, 친환경 해 싸도 다 쬐끔씩은 약 허고 비료도 허고 다 그라지. 안 그러던가?” 물으셨다. 커피에 물 많이 부었다고 한 소리 들으면서 대답했다. “이거 먹는 사람들 다 제가 알고 지냈고 알게 된 사람들인데 어떻게 대강해요. 몰랐으면 모를까 어떤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는 지 다 알고, 좋은 거 먹여주겠다고 해 놓고 어떻게 거짓말 한대요.” 아저씨는 반 근은 될만한 입술을 내밀면서 “그러게 누가 그렇게 하랬나. 재미로 허랑게...”
처음부터 꾸러미 형태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였다고 할 수 도 없다. 그냥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생각했지 농사로 먹고 살 방법은 딱히 없었다. 아는 사람한테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내내 그러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한 3년 수입 없어도 살아보자고 부렸던 호기는 귀농 첫 겨울을 넘기면서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 눈치가 9단인 아내가 “몇 가구라도 일단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물어본 때를 시작으로 잡아야지 싶다.
6가구로 시작했다. 쌀을 보내기 시작할 때쯤 10가구로 회원이 늘었고 또 조금씩 늘어 지금은 21가구. 든든한 후원군이다. 더 늘리고 싶어도 아직은 안 된다. 제철 작물과 함께 1년에 가구당 쌀 1가마를 기본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논을 더 구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 애초 아내 의견대로 주곡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고 합의했고, 쌀, 콩, 장 류 중심으로 가고 있다. 쌀은 8kg이나 16kg씩 매달 도정해서 보내고 엽채류를 제외한 작물을 매달 함께 보낸다. 다른 농작물도 매달 보내야 하니 종류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아내는 고추장 된장 간장 외에 효소와 화장품도 만들었고, 이파리 뜯어 차 덖고 시래기 널었다가 삶아 보내기도 했다. 나물도 뜯고 약초도 베고, 그러고 보니 안 하는 게 없다. 지난해에만 30여 가지를 만들고 캐고 뽑고 거둬서 보냈다.
단순하고 기운 쓰는 건 내 일이라 치고, 회원들과 소통하고 작물 갈무리하고 영업하는 아내의 일도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 회원들에게 이 곳 소식을 전하는 중요한 매체가 있는데, 아내가 택배박스에 매달 넣어주는 ‘꾸러미편지’다.
“이 곳 가을은 참 아름답습니다. 지리산 능선은 붉게 물들었구요. 눈부시게 푸른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몰려다닙니다. 거기다 어느 날부터 등장한 주홍빛 작은 등(燈)들이 감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름다움입니다. 하지만 지리산만큼이나 크게 느껴지는 가을 일이 풍광에 홀린 눈을 거둬들입니다. 어제 벼 수확해서 저는 당그래질 해가며 벼를 말리고, 남편은 감을 따러 농장으로 달려갑니다.” 평소 모습은 선머슴인데 글만 보면 천상 여자다. 그 반대였어도 괜찮은데.
아내는 편지를 통해 어르신들 말씀을 남기려고 애를 쓴다. “설 지나고 냉이 세 번만 캐다 먹으면 살이 쪄서 문도 못 열고 나간다는 말이 있다네요. 냉이가 식물성 단백질이 가장 많다는데, 이 곳 어른들은 다 알고 계신거죠.” 여기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해석을 붙여주기도 한다. “ ‘맘 옳은 사람도 소 멍에만큼은 굽어진다는 거인디, 맘 안 좋은 사람은 굽어지다 못해 딱 붙어불 거이여’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살려고 해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는 게 어렵다는 뜻이라네요”
동네 할머니들께 전해 듣는 남도식 레시피를 전달하기도 한다. “죽순은 껍질째 삶는 게 속살이 더 부드러운데, 번거로우면 껍질 벗겨서 압력솥에 삶으시면 됩니다. 밑동에서 세로로 반을 가르면 연노랗게 먹을 수 있는 속살이 나옵니다. 바로 삶아 초장에 찍어 드시거나 새콤달콤 초무침도 좋구요 나물이나 전을 부쳐도 맛이 좋습니다.”
회원들이 메시지로 보내주는 리액션은 충성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이 농작물을 먹으면 몸과 맘이 정화될 듯 합니다.” “선재 엄마 보고 싶어요. 고마워요~” “구례가 훤히 보이는 듯한 편지 잘 읽었구요. 수고 많으셨어요. 박수를 보냅니다.” 이런 메시지는 나한테 보내도 되는데 꼭 편지 쓰는 사람한테만 수고했단다.
이렇게 고마운 회원들 덕분에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많다. 시장에 내다 맡기는 농산물 가격이 아니라 작물마다 가진 고유의 가치를 따져보고 싶다. 회원의 요구에 맞춰 생산량을 계획하고 그들이 원하는 품목을 재배해서 공급하면 좋겠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땅도 그들과 나눠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음식물 제조업 종사자가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고민하는 철학자가 되면 좋겠다. 이 모든 게 꿈일지 모르겠지만 깨질 때까지 꾸고 있으면 참 좋겠다.
농막을 나서시는 아저씨를 따라 나서다가 허리를 뒤집으며 “아이구, 힘들어 죽겄네” 소리를 했더니 아저씨가 뒤돌아서며 물으셨다. “어이 자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뭔지 아나?” 또 뭐라고 그러실라고 이러나 싶어 “농사일 아닌가요” 했더니 “지금 지가 하고 있는 일이라네. 다 지가 제일 힘든 일 하고 사는 줄 안단 말이여” 하신다. 그러더니 “농사일 좋은 게 뭔가. 오늘 못허면 내일 허고 내일 못허면 모레 허고 그라믄 되지” 하시길래 속으로만 옹알거렸다. ‘아저씨, 제가 그 말에 한 두 번 속은 줄 아세요? 그런 말로 꼬셔서 술 진탕 마시고는 오늘 못한 일 다음날 새벽에 다들 끝내더만요. 모레까지 가는 놈은 저 밖에 없어요. 모레라도 하면 다행이구요.’ 엄밀히 말해 속은 건 아니지만 괜히 중얼거려본다.
희동이에게 한 차례 더 당하신 아저씨가 농장을 나서며 말씀하셨다. “천천히 시나브로 허소. 빨리 헌다고 뭐이 더 잘 산당가. 미루고 미루다가 안 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은 거여. 안 그런가? 놀구 서있지 말고 고구마나 얼른 캐시게.”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약간 종잡기 힘든 말씀이다.
하루 종일 고구마 100kg 쯤 캐고 나니 고맙게도 어둑해졌다. 겨우 꾸러미는 보낼 양이다. ‘난 왜 이렇게 손이 느릴까’ 타박하다가 TV광고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라고 떠들던 게 생각났다. 최근에 만난 한 선배도 같은 말을 하면서 “잘 선택했어. 너! 잘 살고 있는거야”라고 위로했다. 속도전이 전문인 대기업이 그렇게 말하니 철들었나 싶기도 하고, 선배도 그렇게 얘기해주니 고맙기도 했다. ‘그래, 빨리만 가려는 놈들보다 내가 나을 수도 있어. 나중에 누가 이기나 보지 뭐.’
그러다가 다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속도가 느리다는 건 알겠는데, 방향은 맞는 건가? 만약 속도도 느리고 방향도 틀렸다면, 뭐가 잘못되는 건가. 방향이 맞고 틀리는 건 언제나 알 수 있을까. 광고가 말하는 건 방향을 잘 잡아서 속도보다 빨리 가서 이기라는 건지 그거 참… 나도 잘 모르겠다. 제일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다들 어디 가는 건데?”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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