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홍콩 일부 지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를 점거해 온 시위대와 이들의 거리 점거 등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충돌했다. 이날 오전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의 대화 제안을 수용키로 했던 시위 지도부는 이날 밤 다시 당국의 ‘조직된 공격’과 ‘폭력 행위 묵인’을 문제삼으며 대화를 취소했다. 시위대 내 강경파는 애초 “렁 장관의 대화 제안은 지연술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투쟁 강도를 더 높일 것을 주장, 시위대 내 분열상도 나타났다. 시위대가 정부종합청사를 포위한 채 경찰과 대치하며 결국 이날 하루 청사는 폐쇄(셧다운)됐다. 6일째 이어진 시위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날 까우룽(九龍)반도의 몽콕(旺角) 지역에서 시위대의 수가 줄어들자 중장년층 지역 주민들이 시위대를 향해 야유를 퍼 부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시위대는 서로 팔짱을 낀 채 거리 점거를 사수하겠다고 맞섰고, 주민들은 시위대를 거리 밖으로 잡아 당기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쇼핑가인 홍콩섬의 코스웨이베이 지역에서도 시위대와 시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이들이 당국에 의해서 사전에 계획된 공격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시위 지도부는 3일 저녁 정부와의 대화를 취소했다. 시위를 이끄는 홍콩학생연합(HKFS)는 “정부와 경찰은 중국계 국제범죄조직인 삼합회로 의심되는 단체와 친중(親中) 성향 단체가 평화적인 시위대를 공격한 것을 눈감았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취소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렁 장관이 시위대의 사퇴 요구 시한 30분 전인 2일 밤 11시30분(현지시간)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화의 뜻을 밝혔을 때에는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렁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시위대의 사퇴 요구에 대해선 “사퇴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캐리 람(林鄭月娥) 정무사장(우리의 총리 격)에게 팀을 꾸려 HKFS 학생들을 만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생 지도부도 일단 대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HKFS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인 레스터 슘은 “렁 장관이 학생ㆍ시민들과 만나는 데 동의한 것은 8월 3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방안이 결정된 후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민주화 시위의 3대 그룹 중 하나인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도 “정부측이 학생들을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위대와 ‘조직된 도발’로 의심되는 주민간의 충돌이 발생하며 시위대와 정부의 만남은 끝내 불발됐다.
시위대 내에선 처음부터 렁 장관의 대화 제안에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실제로 렁 장관 발언이 생중계된 시위 현장에선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다. 그 동안 시위대가 일관되게 요구한 사항은 렁 장관의 사퇴였기 때문이다. 렁 장관이 직접 대화에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운 데에 분노를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 제안은 지연책일 뿐이며 람 정무사장은 권한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만남의 시기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자극을 받은 일부 강경파는 홍콩섬과 대륙의 까우룽 반도를 연결하는 유일한 수송 통로인 룽워 도로의 점거 시도에 나서기도 했다. 홍콩 전체 교통 흐름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시위 지도부와 강경파는 이날 룽워 도로 점거를 놓고 갈등했다. 중고교 학생단체 학민사조(學民思潮)를 이끌고 있는 17세의 조슈아 웡은 “이번 시위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전쟁”이라며 룽워 도로를 점거하면 일반인 반감만 초래하는 만큼 과격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룽워 도로 점거에 나선 강경파와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실랑이로 이날 이 일대 교통은 큰 정체를 빚었다. 시위대가 지도부 통제를 벗어난 것 아니냔 지적도 나왔다.
정부와의 대화 결과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며 가장 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 애드미럴티(金鐘)역 앞 시위도 계속 이어졌다. 연휴가 끝난 뒤 정상 운영돼야 할 홍콩 정부종합청사는 이날 문도 열지 못했다. 전날부터 렁 장관의 집무실이 있는 청사를 포위한 시위대가 이날 출근하는 공무원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자 렁 장관은 결국 청사를 잠정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청사를 지키는 경찰에게 지급돼야 하는 식사와 식품을 실은 차도 통과가 안 됐다. 시위대는 시위 진압 용품들을 숨겨 반입할 수 있다고 의심했고 구급차가 지나가는 것도 논란 끝에 허용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는 1면 기고문을 통해 “일부 사람들이 불법 집회를 선동하고 격렬한 가두 시위로 중앙 정부를 협박하고 있다”며 “이러한 방식은 결국 성공하지 못할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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