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은의 길 위의 이야기] 더 그럴듯한 표현

입력
2014.10.03 15:28
0 0

관용구의 놀라움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습관적으로 쓰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할 거리가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시간의 힘이 관용구를 귀에 익게 만들었을 것이다. 여름에 특히 많이 쓰는 “더위 먹다”라는 표현은 생각할수록 그럴듯하다. 밥은 입으로 먹고 욕은 귀로 먹고 겁은 마음으로 먹고, 더위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먹는다. 더위를 먹으면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양팔은 축 늘어지며 다리는 제멋대로 후들거린다. 생각해보니 온몸으로 먹는 게 하나 더 있다. 나이. 흔히들 쓰는 말이지만 “밤이 깊다” 같은 표현 또한 정말 아찔하다. 처음으로 밤에 깊이를 부여한 사람을 떠올릴 때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새벽에 가까워질수록 밤은 점점 수심(水深)처럼 깊어지는 것 같다. 동시에 시간이 갖고 있는 깊이뿐만 아니라 밀도나 부피, 무게 같은 것을 헤아리게 만든다. 관용구는 오랫동안 써서 굳어진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문장 속에 잘 녹아 흐르기도 한다. 어떤 반짝이는 표현보다 더 생기가 넘친다. 한여름에 더위 먹듯이, 하루하루 밤이 깊어가듯이. 더위를 먹을 만큼 먹었더니, 어느새 밤이 깊어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바람을 쐬기도, 바람을 잡기도, 바람을 일으키기도 좋은 계절이다. 관용구가 더욱 풍성해지는 계절이다. 그럴듯한 표현이 사방에 많아서, 나는 매일 개중에서 더 그럴듯하고 똑 떨어지는 것을 고르기 위해 고민한다. 이 시간 덕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른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