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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수렁에서 격리… 새로운 '마피아 퇴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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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수렁에서 격리… 새로운 '마피아 퇴치법'

입력
2014.10.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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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조직 두목, 형들도 범죄로 옥살이

엄한 규율 속 학교 다니고 마피아 피해자 마주하자

범죄 벗어난 새 삶 희망

리카르도 스파노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18세 이탈리아 청소년이다. 10대면 누구나 가질만한 활력이 얼굴에 가득하다. 패션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미래에 대한 꿈도 나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 자리 잡은 그의 집안 내력은 평범치 않다. 명가이긴 한데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가문이다.

리카르도의 스파노 집안은 악명 높은 마피아 조직 ‘엔드랜게타’의 주요 일파다. 가문의 역사는 피와 마약과 화약냄새로 흠뻑 젖어있다. 전세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마약 제국을 구축한 엔드랜게타는 이탈리아의 리조트 사업과 독일의 피자 체인 등을 통해 돈세탁을 하기도 한다. 스파노 집안은 엔드랜게타의 피비린내 나는 울타리 안에서 범죄로 부를 쌓았고 업보인양 다양한 비극도 겪었다.

지난 6월 리카르도 코르디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한 해안가 건물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마피아 집안에 태어난 코르디는 범죄조직에서 청소년을 분리시키려는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칼라브리아=AP연합뉴스
지난 6월 리카르도 코르디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한 해안가 건물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마피아 집안에 태어난 코르디는 범죄조직에서 청소년을 분리시키려는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칼라브리아=AP연합뉴스

리카르도는 갓난아기 시절 아버지이자 일파의 두목인 코시모를 잃었다. 코시모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총알세례를 받았다. 코시모와 오래도록 불화했던 한 마피아 집안은 그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나갈 정도로 총격을 가했다. 리카르도의 큰형 살바토레의 인생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살인죄로 30년형을 선고 받고 독방에서 생을 소진하고 있다. 또 다른 형 도미니코는 조직범죄 가담 혐의로 감옥에 있고, 바로 위 형 안토니오는 감방 병원에서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 리카르도의 어머니는 아들들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이탈리아 이곳 저곳을 오가며 지칠 대로 지쳤다.

피로 얼룩진 집안 내력은 리카르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듯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사업에 몸을 담고 방아쇠를 당겨야 할 삶이었다. 집을 벗어나 딱히 살 방책도 없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청춘 실업률은 악명이 높다. 하지만 AP통신은 최근 취재를 통해 리카르도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았다고 전했다. 리카르도의 갱생은 마피아 퇴치에 골치를 앓고 있는 이탈리아 사회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2년 전 7월 르카르도는 재판정에 불려갔다. 절도와 경찰차 훼손 혐의 때문이었다. 암흑가의 왕자로 태어난 리카르도는 당연하게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증거 불충분이었다. 리카르도의 범죄에 대해 증언할 만큼 만용을 부릴 사람은 없었다. 리카르도의 형 안토니오를 감옥으로 보냈던 판사는 리카르도의 미래가 걱정됐다. 리카르도는 범죄로 낙인 찍힐 인생에 순순히 자신을 바칠 의사가 명확했다.

판사는 살인과 죽음이 다반사인 집안에서 리카르도가 걸어갈 길은 너무나 뻔하다고 판단했다. 리카르도를 가족과 떼어놓기로 결정했다. 마약 중독 등으로 자녀를 키우기 부적절한 부모로부터 아이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이탈리아 국내법을 활용했다. 리카르도와 그의 어머니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리카르도는 칼라브리아에서 시칠리아섬 북동부의 항구도시 메시나로 가게 됐다.

메시나에선 새로운 삶이 기다렸다. 야간 외출 금지 등 엄격한 규칙이 리카르도를 옥 죄었다. 곧 학교도 다녀야 했다. 버스를 타고 숙소 인근 직업학교로 등교했다. 후견인도 따라 붙었다. 리카르도 집안 사람들이 알면 대경실색할 인물들이었다. 후견인 중 한 명인 심리학자는 리카르도를 마피아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추모식에 데려갔다. 리카르도는 곧 조직범죄의 끔찍한 결과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한 건설회사 사장이 양아버지 역할을 했다. 마피아에 보호비를 상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는 인물이었다.

환경이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면서 리카르도는 변해갔다. 방과후 학교에 가서 결손가정 아이들을 돌봤다. 무표정했던 얼굴이 미소로 채워지기도 했다. 위기도 있었다. 착한 삶에서 ‘탈옥’을 시도하려 하기도 했다. 적극 만류하는 사람이 있었다. 리카르도의 어머니였다. 리카르도는 갱생 교육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위험은 있으나 희망도 강건하다. 리카르도의 어머니는 가문을 벗어난 아들이 로마에서 일자리를 얻어 함께 사는 꿈을 꾸고 있다.

리카르도의 사례는 마피아 퇴치의 좋은 선례로 남을 듯하다. 이탈리아 마피아의 가장 큰 자산은 미래의 인재가 될 집안의 자녀들이다. 뒷골목의 재목들이 거물로 거듭날 기회를 뺏으면 마피아의 위세도 한풀 꺾이리라는 게 이탈리아 당국의 판단이다. 리카르도 이후 20명 가량의 마피아 자녀들이 부모들로부터 떨어져 지내게 됐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죄수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의 6분의 1도 채 안 된다고 사회복지사들은 말한다. 미래의 악당들이 저지를 납치와 살인, 마약 유통 등을 감안하면 사회적 비용은 더욱 절감된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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