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날려버린 남북스포츠해빙 기류
현정화 음주운전으로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 사퇴…리분희와 23년 만의 감격 재회 물거품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18~24일)은 20여년 전 세계 탁구를 평정했던 현정화(45)와 리분희(46)의 상봉 무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둘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금메달을 합작한 이후 번번이 재회할 기회를 놓쳤다. 1993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에서 잠깐 ‘인사’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 때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경쟁상대의 처지였다.
20여 년이 흘러 현정화는 한국마사회 탁구 감독ㆍ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 위치에 올랐다. 리분희는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의 명함을 갖고 있었다. 만약 이들이 인천에서 다시 만난다면 91년 지바 세계선수권 이후 ‘제대로’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23년 만의 감격적인 상봉이다. 과거의 추억과 흘러간 시간을 안주로 ‘탁구 여제’들이 얼싸안는다면 그 자체만으로 남북 스포츠 교류의 해빙 모드를 상징하는 장면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정화와 리분희의 만남은 예기치 않게 무산됐다. 현 감독이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1일 현 감독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0시 50분쯤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오리역 사거리에서 현 감독이 몰던 재규어 승용차가 오모(56)씨가 운전하던 그랜저 택시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오씨와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 1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현 감독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기준을 훌쩍 넘는 0.201%로 측정됐다.
경찰 조사에서 현 감독은 “(어디에서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 감독의 신원을 확인하고 우선 귀가 조치했으며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 감독이 술에 많이 취해 일단 귀가시켰다. 추후 일정을 잡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감독은 한국 여자 탁구의 대표적 스타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도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스타’로 꼽혀 다른 7명과 함께 대회기를 들고 입장했다. 하지만 음주운전 사고로 그간 쌓아 온 업적이 무너지고 말았다.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직에서도 물러 나야 했다.
현 감독은 이날 조직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임무를 다하고 싶었는데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현 촌장의 사의를 수리했다. 조직위 관계자는 “원활한 대회 개최를 위해 후임 선수촌장을 가능한 한 빨리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애초 대회 흥행을 위해 현 감독, 축구스타 차범근, 박지성 등 글로벌 스타들을 후보로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인지도뿐만 아니라 리 서기장과의 친분을 고려해 현 감독을 선수촌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하지만 대회 개막을 불과 보름 앞둔 시점에서 현 감독의 음주 운전 사건이 터졌다. 조직위는 여자 기계체조 선수로 활약하다가 비운의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김소영(45) 씨를 후임으로 검토하고 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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