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거 흐름 좌우하는 경합주, 지난달 25일부터 사전투표 시작
참전 군인 출신 공화당 여성 후보 "강한 미국" 기치로 판세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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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부 곡창지대인 아이오와주는 전체 50개주 가운데 중간 규모(인구 309만명)로 평소에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지역이다. 그러나 선거가 치러질 때의 정치적 위상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4년마다 어떤 주보다 먼저 전당대회(코커스)를 치러 초판 대선 판세를 결정하고, 대통령 임기 중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도 중서부 경합주(스윙스테이트) 가운데 가장 먼저 사전투표(공식 선거일 40일 전)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2008년 당시 정치 신예 버락 오바마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오바마 돌풍’의 진원지가 된 게 대표적이다. 아이오와는 미국 정치의 큰 흐름을 결정하는 풍향계 같은 곳이다.
2014년 가을 이 풍향계에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오바마 후보(52대 46)를 지지했던 여론이 급속히 공화당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개척자로 온 프랑스인이 ‘수도승의 강’(Riviere des Moines)을 따서 붙였다는 주도 디모인(Des Moines) 2번가 120번지 포크(Polk) 카운티 회계국 건물. 미국에서 가장 먼저 사전투표가 진행 중인 건물 1층에는 붐빌 정도는 아니어도 끊이지 않고 유권자 행렬이 이어졌다. 제이미 피츠제럴드 포크 카운티 선거관리 최고책임자는 “첫날(9월 25일)보다는 줄었지만 오전 8시와 낮 12시 무렵에는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사전투표를 한다”고 말했다. 또 “전체 180만명 유권자 가운데 27만~35만명 가량이 사전투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들의 화제는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한 조니 언스트 공화당 후보였다. 지난달 28일 민주당 브루스 브레일리(현 연방 하원의원) 후보와 TV토론 직후 ‘최저임금’에 대한 말 실수로 점수를 잃은 것으로 평가됐지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동정 여론으로 오히려 판세를 뒤집었다.
여성이면서도 2003년 이라크에서 미 육군 중대장으로 복무한 언스트 후보는 “강한 미국” “애국심” 등을 내세우며 보수 노년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 내는데 성공했다. 초반 브레일리 후보에 뒤졌으나 9월 중순에는 박빙(43대 43) 구도를 만들더니, 지난달 말에는 지역 언론 조사에서 전세(44대 38)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투표소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쩔쩔매는 오바마의 나약한 정책에 실망했다”며 “언스트가 미국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오와주 공화당 본부 제프 패치 언론국장도 1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아이오와 최초의 여성 연방 상원의원 탄생은 시간 문제”라고 자신했다. 패치 국장은 “38%까지 떨어진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 연방 하원의원 시절 워싱턴 정치에만 매달린 브레일리 후보에 대한 실망감이 겹치면서 ‘바꿔야 한다’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력 정치평론지 폴리티코 기자 출신인 그는 “조니(언스트 후보 애칭)가 상원의원에 당선되면 상원도 공화당이 장악하게 된다”며 “새로운 공화당은 조니 의원 주도로 아이오와 농민과 축산업자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농산물 수입장벽을 낮추는 데 강력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선거 이후 미 의회와 정치권의 구도 변화가 한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톰 하킨 의원 은퇴로 공석인 자리를 수성해야 하는 민주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언스트 후보의 과거 말실수와 약속 번복을 발췌한 TV 비방광고를 내보내는가 하면 남편보다 인기가 많은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를 모셔와 세몰이에 나서는 막판 총력전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전문가들은 아이오와의 판세 역전을 11월 4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상원 장악을 예고하는 신호로 받아 들이고 있다. 민주당이 아이오와를 내준다면 이라크 참전 여성 군인의 ‘개인기’때문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 하락이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업률 하락과 성장률 상승 등 경제지표 개선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체감경기는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경제 양극화의 가장 큰 희생자인 서민들이 양극화를 조장해온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한탄할 정도다. 공화도 민주도 아닌 중도층은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러시아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건설을 외치며 시리아, 이라크 일부 지역을 점령한 이슬람반군(IS)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 등 외교정책 실패에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8월까지만 해도 박빙이던 주요 격전지 가운데 상당수가 공화당 우세로 바뀌었다. 전체 상원 의석(100석) 가운데 공화당은 현재 45석에 불과하지만, 35석을 교체하는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게서 최소 6석을 빼앗아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으로 아이오와를 비롯해 알래스카, 콜로라도, 조지아,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 등 경합주에서 공화당 후보가 눈에 띄게 약진해 상원을 장악할 확률이 76%로 분석됐다. 이는 일주일 전 조사(65%)보다 11%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선거분석 전문기관 파이브서티에이트도 각각 67%와 60%로 예상했다. 역시 일주일 전보다 12%포인트, 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 신문들의 분석에 따르면 알래스카의 경우 지난달 20일까지는 접전 구도였지만 월말을 고비로 공화당 댄 설리번 후보가 민주당의 현역 마크 베기치 상원의원을 앞서는 형국이다. 또 콜로라도에서도 코리 가드너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마크 우달 상원의원을 앞서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됐다.
435명 전원을 새로 뽑는 하원은 일찌감치 공화당 승리로 굳어진 상태다. 결국 11월 선거 이후 미국 상ㆍ하원 모두 여소야대가 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하려던 이민개혁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이 무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진영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최근 “워싱턴의 여러 곳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임기 후반 레임덕이 우려되는 오바마를 공화당은 중간선거 이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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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인(아이오와)=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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