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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투사' 김부선씨 사례로 본 '자치의 딜레마'

입력
2014.10.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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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비리 의혹-폭행 문제로 아파트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는 배우 김부선이 26일 오후 서울 동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난방비 비리 의혹-폭행 문제로 아파트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는 배우 김부선이 26일 오후 서울 동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난방투사’. 요즘 영화배우 김부선씨를 부르는 말입니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의 난방비 비리 의혹을 제기해 붙여진 별명입니다. 아직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여론은 김부선씨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파트 관리비리에 대한 공감대가 넓다는 얘기겠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통상 투사라고 하면 부패한 정부나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일컫는 의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김부선씨가 맞서 싸우고 있는 대상은 정부나 대기업이 아닌 같은 동네 주민들입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손으로 선정한 관리업체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행법상 아파트 관리는 외치(外治)가 아닌 자치(自治)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일반 주택가의 가로등이 수명을 다하면 정부가 이를 교체해주지만,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민들에게 받은 관리비로 교체를 합니다. 대신 각종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낼 기회도 보장됩니다. 조금 과장하면 아파트 단지마다 일종의 작은 정부가 있는 셈이지요.

사실 아파트 관리 비리의 해결이 간단치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입주민들 사이에서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비리를 저지른 것이 발각돼도 이사를 강제할 수 없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반목을 거듭하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런 까닭에 정부는 점차 직접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주민 스스로 운영하도록 했더니 온갖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있다는 명분입니다. 회계 등에 대한 외부감사 의무를 강화하고 국토교통부가 직접 관리업체들에 대한 주민 평가를 점수화하는 식입니다. 지난달 서울시에서는 아예 LH나 SH 같은 공기업들이 직접 민간아파트 관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이 원한다면 관리업무를 사실상 정부 기관이 직접 담당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움직임이 주민 자치를 침해하는 것이라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문제가 많으니 정부도 어쩔 수 없이 나서는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우선 전국에 300가구 이상인 공동주택 단지는 1만3,500여개에 달합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시콜콜 개입을 하려면 상당한 인원과 예산을 새로 확보해야 합니다. 국토부가 공동주택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신설한 ‘우리가(家)함께 행복지원센터’에 배정된 예산은 5억원입니다. 민원 상담을 위한 콜센터 설치에 이 정도 예산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직접 관리 업무를 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국민 세금 부담이 커지는 것이지요.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민 자치가 위기에 봉착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해법은 없는 걸까요?

전문가들이 내놓는 답은 오히려 자치를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자치 시스템을 감시할 또 다른 주민 자치 기구를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얘기입니다.

현재 아파트 관리는 입주자대표회의-관리업체-관리사무소장, 삼각 관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동대표 등으로 구성된 주민들의 대표기구입니다. 관리업체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찰을 통해 선정돼 실질적으로 관리업무를 전담합니다. 관리사무소장은 관리업체에 소속돼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사업자에 가깝습니다. 관리업체에 고용이 되지만 입주자대표회의의 신임을 받아야 선임이 될 수 있습니다. 대표회의와 관리업체가 짜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다 보니 거리를 둘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관리소장이 두 곳의 눈치만 볼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입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이 같은 삼각 시스템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는 것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에 함께 참여하고 회계 등에 대해 정기적인 감시를 하는 주민 기구를 별도로 두자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상습적인 비리로 악명 높던 단지에서 이런 식의 감시 기구를 설치한 후 비리가 사라진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엔 전제가 있습니다. 그만큼 주민들의 참여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것은 자치가 활성화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지요. 달리 말하면 지금까지의 아파트 비리는 주민 참여의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습니다. 난방투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생각하면 너무 이상적인 해법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당장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부터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요.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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