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어제 도쿄에서 제13차 차관급 전략대화를 열었다.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과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이끈 전략대화는 양측이 공동 발표할 만한 즉각적 성과는 없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최초로 17개월 만에 전략대화가 성사된 것 자체가 양국 관계의 먹구름이 조금씩 걷혀가고 있음을 일깨웠다.
2005년 시작된 전략대화는 양국의 당면 현안을 넘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반도 주변 동북아 정세와 양국이 공동관심을 기울일 만한 국제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기 위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번도 열리지 못했고,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열릴 듯하다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보류된 바 있다. 어제 대화에서도 양측은 동북아 정세와 국제사회 동향과 관련한 양국 협조 방안을 논의하고, 북핵 문제 대응의 공조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일반사항보다 훨씬 큰 관심이 쏠렸던 양국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사전 환경조성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합의나 공동인식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다. 정부가 오랫동안 사실상의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들어온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아직까지 다듬어지지 못했음을 확인시켰다.
수많은 과거사 문제 가운데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핵심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어제 “가장 시급한 게 군대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문제”라며 “피해 당사자와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열린 국장급 협의가 이 문제를 집중 논의했지만 아직 진전이 없었듯, 어제 차관급 전략대화도 그 연장선에 머물렀다.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경위나 그를 둘러싼 양국의 현격한 입장 차이에 비추어 애초에 조속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역대 일본 정부의 인식 가운데 가장 진전된 것으로 평가 받은 ‘고노 담화’나 그에 기초한 1995년의 ‘아시아 여성기금’이 실패한 바 있어 더욱 진전된 내용이 담겨야만 피해 당사자의 납득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고노 담화’ 수정 움직임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은 데다 오랜 진위 논란을 부른 ‘요시다 증언’ 관련 기사를 아사히신문이 취소한 데 따른 인식 혼란으로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양국이 국장급 협의를 꾸준히 이어왔고, 차관급 전략대화의 분위기도 싸늘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을 만하다. 이는 윤 장관이 밝혔듯, 양국이 내년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좀 더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때문이다. 그런 기본 자세만 확고하다면 양국 협상이 타협점에 이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양국 관계개선이 당면 과제이자 한국 외교의 시험대라는 각오로 외교 당국이 지혜를 짜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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