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 열린 1일 인천 선학핸드볼경기장. 심판의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순간 14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부동의 라이트백 우선희(36ㆍ삼척시청)는 4년 전 흘린 눈물을 환한 웃음으로 바꿨다. 2010년 광저우 대회 4강에서 일본에 막혀 좌절됐던 대회 6연패의 아쉬움을 되갚는 순간. ‘우생순 신화’ 최후의 멤버로 후배들과 다시 일궈낸 감동적인 금메달이었다. 한국은 29-19로 일본을 대파하고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아 왔다. 아시안게임 통산 6번째 정상등극이다.
5골을 넣으며 우승 주역이 된 우선희에겐 남다른 금메달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화제가 된 ‘우생순 신화’ 때 그는 대표팀의 막내였다. 여자 핸드볼에겐 당시 결승전에서 펼친 명승부를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이 때부터 반사적인 수식어로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어느덧 4번째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주장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최고참 선수가 됐다. 무엇보다 광저우 대회 4강에서 일본에게 당한 뼈아픈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4년 간 절치부심했다. 당시 여자 핸드볼은 예선부터 4전 전승을 거두며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이어온 5연패 신화는 6연패로 이어질 것이 당연해 보였다. 일본은 당시만 해도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28-29, 1점 차 패배. 우선희는 “아직도 그때만 억울하고 서글프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준결승 두 번째 경기에서 일본이 중국을 28-25로 꺾고 결승 상대로 정해지자 우선희는 기다렸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선희는 금메달을 다시 품기까지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에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노장도 아니다. 그는 지난달 28일 카자흐스탄과 준결승에서도 팀 내 최다 10골을 퍼부으며 41-30 승리에 앞장섰다. 핸드볼과 태극마크에 청춘을 바친 우선희는 결혼 10년 차 주부다. 남편과 가족의 지원이 10년 넘는 대표팀 생활의 큰 원동력이다. 우리 나이로 서른 일곱인 우선희는 대표팀 16명 가운데 골키퍼 송미영(39ㆍ인천시청) 다음으로 고참이다. 은퇴를 고려할 시점이 됐지만 핸드볼계는 아직 우선희를 대체할 만한 인재를 찾지 못했다. 임영철 감독은 “노장이 있어야 어린 선수들도 기술을 보고 배우는 것”이라며 “우선희가 리우 올림픽까지 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말할 정도다.
광저우 패배를 어제 일처럼 기억하듯 한국은 초반부터 일본을 몰아붙였다. 경기 시작 7분이 넘도록 무득점으로 막고 우선희와 류은희(24ㆍ인천시청)의 연속 득점으로 3-0으로 달아났다. 이후로도 이은비(24ㆍ부산시설관리공단)가 얻어낸 7m 스로를 김온아(26ㆍ인천시청)가 넣는 등 점수 차를 계속 벌려 갔다. 쉴새 없이 공격을 퍼부은 한국은 전반 종료 직전 15-4를 만들며 일찌감치 일본의 백기를 받아 들었다. 류은희는 최다 8골을 넣었고, 김온아와 김선화(23ㆍ인천시청)는 ‘자매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날 경기는 해피엔딩으로 피날레를 장식한 우선희와 여자 핸드볼의 2014년‘우생순’이었다.
인천=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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