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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크리켓, '비인기종목' 축에라도 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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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크리켓, '비인기종목' 축에라도 들었으면…"

입력
2014.10.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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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크리켓의 역사적인 아시안게임 데뷔전이 열린 27일 인천 서구 연희 크리켓경기장. 한국 크리켓 대표팀은 말레시이시아를 상대로 71런(점수와 같은 개념)을 기록하며 분전했으나 이어진 말레이시아의 맹공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말레이시아는 주어진 20오버(팀당 주어진 공격 횟수) 중 6오버 만에 한국이 기록한 71런을 넘기며 한국을 71-72로 꺾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깨질 줄 알면서도 부딪히는 몰디브의 도전 정신(▶관련기사 보기)이 주목 받았는데, 사실 한국 크리켓이 딱 그 모습이었다.

● 평일엔 국가대표, 주말엔 선생님

경기장엔 패배의 탄성보다 격려의 응원 목소리가 컸다. 워낙 인기 없는 종목인 탓에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무료 입장 경기로 지정했음에도 관중석에는 일반 관중들보다 선수의 가족과 지인, 크리켓 동호인들이 더 많았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한 목소리로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이환희'를 연호했다. "이환희 선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라고 했다.

경기가 끝나자 한 선수가 텅 빈 경기장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말한 '선생님'이자 크리켓 국가대표인 이환희(33·대한크리켓협회)였다. 이날 학생들을 인솔한 안성 개정초등학교 교사 김영인 씨는 "이환희 선수가 주말마다 학교에 찾아와 크리켓을 지도해 준다"고 귀띔했다.

김영인 씨는 "사실 우리 학교가 전교생이 74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학교다. 안성에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음에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꾸준히 학교를 찾아줬다"고 말했다.

제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이환희는 단체사진 촬영에 응하면서도 연신 "응원 와 줘 고맙다"며 웃었다.

● "힘겹게 꽃은 피었는데, 뿌리가…"

제자들의 응원이 힘이 됐을까. "첫 경기부터 패해서 너무 아쉽다"던 이환희는 2차전인 중국전에서 '깜짝 승리'를 이끌었다. 호흡을 맞춘 지 겨우 2년째인 한국 대표팀은 넉넉한 지원 속에 6년간 호흡을 맞춰 온 중국에 88-82로 승리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한 크리켓 대표팀은 8강 상대 스리랑카에 55-172로 패하며 대회를 마쳤다.

8강 진출이라는 '절반의 성공'을 이룬 이환희는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었다. 이제 저변 확대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2018 자카르타 대회 출전까지도 내다볼 수 있을 나이였지만, 척박한 땅 위에서 가까스로 핀 꽃의 뿌리가 너무 허약하다고 판단한 탓이다.

크리켓 대표 이환희가 경기 후 안산 개정초 학생들을 찾아와 인사를 나눴다. 인천=김형준기자
크리켓 대표 이환희가 경기 후 안산 개정초 학생들을 찾아와 인사를 나눴다. 인천=김형준기자

대한크리켓협회 학교체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협회에 등록된 유소년 클럽은 초등학교 1팀(안성 개정초), 중학교 1팀(용인 서원중) 뿐"이라며 고사 직전의 크리켓 저변을 설명하면서 "앞으로도 지도자 강습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는 17세 이하, 19세 이하 대표팀까지 꾸려 국제 무대에서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지나간 8강 진출의 성과보다 ‘크리켓의 미래’로 가득했다.

● "크리켓은 '비인기종목' 축에도 못 낀다" (▶

크리켓은 어떤 종목?

)

다 힘들었겠으나, 가장 힘들었던 게 어떤 점인지 물었다. 한참 고민하더니 "우린 '비인기종목' 조차도 아니다. 뭐라도 보여 준 뒤 비인기종목에라도 끼고 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환희는 한국 크리켓 1세대다. 2001년 자신이 다니던 성균관대에 크리켓 동아리가 결성됐고, 그 때 뭉친 사람들이 좋아 크리켓에 정을 붙여 여기까지 오게 됐다.

국가대표 초창기의 연습 상대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만든 크리켓 동호회 정도였다. 밥 먹듯 당하는 패배에 "국가대표 맞느냐"는 무시도 당했다. 당연히 지원도 없었다. 자비를 모아 꾸려왔던 대표팀에 지원이 시작된 건 2012년 3월, 아시안게임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부터다. 그 때부터 선수들은 한 달에 80만원 남짓한 훈련비를 받아가며 아시안게임을 준비해 왔다.

선수촌 입촌도 못 한 채 모텔을 전전하며 빨래와 식사를 힘겹게 해결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금부터는 다시 각자의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관심도 지원도 부족하지만, 이환희는 "우리가 잘 해야 관심을 주지 않겠느냐"며 "10년 안에 꼭 아시안게임 메달을 딸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30일 오후 인천 서구 연희크리켓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크리켓 남자 8강전 한국과 스리랑카의 경기에서 한국 이환희가 볼을 던지고 있다. 뉴시스
30일 오후 인천 서구 연희크리켓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크리켓 남자 8강전 한국과 스리랑카의 경기에서 한국 이환희가 볼을 던지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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