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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훼손

입력
2014.10.0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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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더럽혔다고 처벌하는 나라는 드물다. 썩은 권력자가 진실을 감출 목적으로 법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허위사실 유포란 명목도 검찰이 사실상 대통령 하명(蝦命)기관으로 전락한 이 나라에선 꾸미기 나름이다. 사진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두고 선정적 의혹을 제기한 뒤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8월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명예를 더럽혔다고 처벌하는 나라는 드물다. 썩은 권력자가 진실을 감출 목적으로 법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허위사실 유포란 명목도 검찰이 사실상 대통령 하명(蝦命)기관으로 전락한 이 나라에선 꾸미기 나름이다. 사진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두고 선정적 의혹을 제기한 뒤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8월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비리는 권력의 동반자다. 한데 드러나는 법이 좀체 없다. 힘을 편드는 게 법의 생리여서다. 불명예 감내를 불명예로 여기는 지고 존엄이 대통령인 나라에선 의심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정권이 감추고 싶은 일을 필설로 고발하는 이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명예훼손죄를 빈번하게 동원하다 보니 검찰도 그 반민주성에 둔감해진 모양이다. 세월호대참사 와중의 대통령의 사생활에 관한 추측보도를 한 외국신문사 지국장까지 명예훼손혐의로 소환해 국제망신을 자초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죄로 투옥되는 전 세계인들 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명예훼손죄 왕국, 대한민국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냄과 동시에 정권의 위신까지 침몰시킨 것이다. 급기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행위에 엄정 대처하기 위해 SNS까지 감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적잖은 네티즌들이 감시를 피해 사이버 망명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언론의 자유를 심히 위축시키는 현 명예보호법제는 우리 민주주의의 저급성을 반영한다. (…) 그 대표적 해악은 공론장에서 진실에 의한 비판을 하는 이조차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나아가서는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히 검증받아야 할 공직선거 후보자에 대한 진실 적시에 의한 ‘비방’도 처벌하기 때문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쌓아 올린 ‘허명’과 ‘썩은 기득권’도 두터운 법적 보호를 누린다. 반면 국가ㆍ사회의 방부제인 표현의 자유는 심히 후퇴하고 가치의 분배는 정의를 외면하게 된다. (…) 비위는 보통 은밀하게 저질러지고, 권력자는 진실의 부상을 막을 수도 있다. 제기된 의혹을 바탕으로 진실의 실체에 접근하려면 대부분 권한 있는 국가기관의 조사, 특히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한 보완을 요한다. 그런데 권력은 검ㆍ경은 물론 법원에까지 손을 뻗쳐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의혹제기자의 형사법적 운명을 가르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검ㆍ경 및 법관의 직업윤리와 그 사회의 법치와 민주주의의 수준인 것이다. 이는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도 생사람을 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애매한 경우도 적지 않고, 검ㆍ경은 물론 법원의 독립성마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진실의 단서마저도 허위로 둔갑하기 쉽다. 따라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것은 사회의 정의나 투명성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 (…) 이처럼 명예훼손죄가 정권이나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 등 극소수다. (…) 다수 국가는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했거나 벌금형만 남겼고, 자유형이 있는 독일 등에서도 처벌사례는 극소수다. 공개적으로 모함을 받는 자는 대부분 자신의 수중에 있는 반증을 제시해 이를 무력화할 수 있고, 민사배상으로도 공연한 모해를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명예훼손죄의 폐지가 이상적이다. 완전한 폐지가 시기상조라면 명백한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이를 유포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의적 행위’에 대한 처벌만 남겨두면 된다.”

-부패 조장하는 명예훼손죄 대폭 손질해야(한국일보 ‘아침을 열며’ㆍ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전문 보기

“‘갈라파고스 현상’은 세계적 기준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기준을 고집하다 낭패를 겪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대륙에서 떨어져 고유한 생태계를 유지하다 멸종 위기를 맞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빗댄 용어다. 그런 모습을 한국의 사법 현실에서 본다.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직후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를 엄단할 전담팀을 발족했다.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이 우선 수사 대상이라고 한다. 앞서 검찰은 8월 초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명예훼손사건 전담팀을 설치했다. 이 팀이 먼저 손을 댄 사건이 세월호 침몰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을 두고 선정적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였다. 주문 즉시 맞춤 서비스 같다. 최고권력자 한 사람을 위해 사법권력이 작동하는 꼴이니 다른 나라에선 찾기 힘든 전근대적 시대착오다. 시대착오는 ‘글로벌 스탠더드’도 무시한다. 허위사실 유포 자체에 대한 형사처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없는 일이다. (…) 검찰은 대신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겠다지만, 형사상 명예훼손 역시 많은 나라에서 쓰이지 않는다. (…) 미국에선 50개 주 가운데 15개 주만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인데, 그나마 사건은 전국적으로 연간 2건뿐이다. 유엔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미주기구(OAS) 등이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를 권고해왔고, 실제로도 폐지가 잇따른다. 권력자를 위해 명예훼손죄가 악용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역주행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사건도 국제 표준에 맞지 않는다. (…) 이런 일들은 진작 제동이 걸렸어야 했다. 시대와 원칙에 맞지 않게 함부로 법률을 들이대면 법치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진언을 누군가 했어야 했다. (…) 하지만 정부의 누구도 그러지 않은 듯하다. 그런 일을 해야 할 사람에는 검찰총장도 있겠지만, 정작 총장은 보이지 않는다. (…) “윗분의 뜻을 받들어”를 앞세운 법률전문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좇아 ‘뜻을 받들기’만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갈라파고스 법치(한겨레 ‘아침 햇발’ㆍ여현호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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