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옛 소련 서남부에 위치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시민들이 손에 장미를 들고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에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대통령 일가의 부정부패와 부정선거 모의에 저항한 시민혁명을 서방 언론은 ‘장미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 혁명은 소련 해체 이후 혼란에 빠져있던 주변국에 큰 영향을 미쳐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과 2005년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 혁명은 전염성이 강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지펴진 시민혁명의 불씨는 몇 년 후 민주화의 무풍지대였던 중동으로 옮겨졌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노점상의 분신으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2011년 튀니지 국화 이름을 딴 ‘재스민 혁명’으로 번졌다. 아프리카 및 아랍권에서 쿠데타가 아닌 민중봉기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첫 사례였다. 혁명의 불길은 이집트와 알제리, 예멘, 요르단 등으로 확산돼 ‘아랍의 봄’을 만들어냈다.
▦ 국제사회에서는 그 다음 혁명의 발생지로 중국과 북한을 지목했다. 중국 당국은 인터넷에 ‘재스민 시위’를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자 극도로 긴장했으나 그 때는 별탈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중국 본토는 아니지만 중국령인 홍콩에서 결국 대규모 시위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의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커져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다.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한 강제 진압에 시민들이 우산으로 맞서 ‘우산 혁명’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시위 배경에는 중국이 2047년까지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야금야금 훼손하는데 대한 불안감이 크다.
▦ 중국 정부는 민주주의가 본토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 강력한 대응을 지시했다. 일부 언론에는 발포 계획설까지 보도됐다. 중국 국경절인 오늘(10월 1일) 대규모 시위가 예고돼있어 유혈사태와 함께 제2의 천안문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파죽지세로 개혁을 몰아붙이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큰 시련에 부닥쳤다. 시위를 강권으로 억누를 경우 쏟아질 국제사회의 비난과 시위대 요구를 수용했을 때 야기될 시진핑 체제의 약화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유와 민주를 향한 민중의 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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