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어제 세월호 참사 후 160여 일을 끌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다. 이와 함께 여야는 19대 국회 후반기 들어 처음으로 91개 안건을 본회의에서 처리해 식물국회의 오명을 벗고 정상화 길에 들어섰다. 늦게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나날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완구 새누리당,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어제 진통 끝에 여야 합의로 특별검사 후보 4명을 추천하는 내용을 추가해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타결했다. 지난 8월 19일 7인으로 이루어지는 특검추천위원회 구성에서 여당 몫 2명도 야당ㆍ유족의 사전 동의를 얻는다는 2차 합의와는 별개로 중립적 인사 선정을 위해 안전장치를 둔 것이다. 유가족은 대신 그간 고집해왔던 진상조사위원회 수사권ㆍ기소권 부여 주장을 접었다.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려운 인사는 특검후보에서 배제키로 했고, 후보선정 과정에 유가족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키로 했다. 또 세월호법과 함께 정부조직법, 범죄수익규제처벌법(일명 유병언법)을 10월 말까지 일괄 처리키로 했다.
그간의 지루하고 지난한 협상 과정과 결과를 돌아본다면 누구도 승자일 수 없다. 여야ㆍ유가족 3자가 반성할 대목이 적지 않다. 지난 1, 2차 합의 파기 과정에서 야당은 원내대표의 리더십 부재와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냈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사회적 논란이 많은 요구를 계속 고수함으로써 세월호 유가족들이 더 얻은 게 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성원은 현저히 떨어졌고, 대리기사 폭행사건으로 동정적 여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3차에 걸친 세월호 협상의 우여곡절에는 세월호 참사를 폄훼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자세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가족의 불신을 초래하면서 1, 2차 합의 거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야당에만 합의 파기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조기 타결도 가능했던 세월호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정치ㆍ사회적 비용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앞으로도 세월호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을 빚을 소지가 없지 않다. 당장 특검후보 추천이나 진상조사위원회와 특검의 연계방안 등에서 3자가 진통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참사 당시 청와대 조치와 대통령 행적 조사를 놓고도 소모적인 논쟁을 빚을 수 있다. 여야는 물론 유가족도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그간의 문제점과 잘못을 되돌아보면서 합리적 선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법 합의 후 곧바로 본회의를 열어 91개 계류 법안을 처리했지만 여의도 정치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사정은 아랑곳없이 정치는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각종 경제관련법 등 여야 입장이 갈리는 쟁점 법안이 겹겹이 쌓여 있다.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당이나, 거부정치에 기대는 야당의 자세로 생산적 국회는 요원하다. 이번 세월호 협상을 거울삼아 여야 모두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를 하길 권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