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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살아남은 건물들

입력
2014.09.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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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선생은 한국 근대문학사를 쓰기 위해서는 ‘근대’라는 괴물과 정면대결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서양에서 시작했지만 일본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온 근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쉽게 결론이 나기 힘든 과제다. 근대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부터 그 시작을 언제로 삼을 것인가 등등 난제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에 온 일본인이 쓴 시나 소설을 한국 근대문학사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는 않는다. 설령 일본인이 한글로 작품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문학에서는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논리가 건축으로 넘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일본인 또는 일본의 발주를 받은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이 서울에 남긴 건축물은 어떻게 해야 할까? 흔한 집이나 상가건물이 아니라 한 시절을 대표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면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 누가 설계하고 지었는지 보다 누가 그 건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건축의 국적은 건축가가 아니라 사용자와 장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토마스 만은 히틀러가 집권하자 독일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가면서도 독문학의 전통을 자신이 이어나간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건축가들은 그럴 수 없었다. 미스와 그로피우스 같은 독일 거장 건축가의 미국행은 미국의 근대건축을 새롭게 했다. 문학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의 언어에 달려 있다면, 건축은 움직일 수 없는 땅에 매여 있는 셈이다.

우리의 사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지은 건축물들은 대개 반쪽짜리 근대건축이기 때문이다. 기능과 재료, 구조를 합리적으로 사용하고, 양식과 장식을 배제하려는 감수성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건축과는 거리가 멀다. 식민 권력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서양의 과거 양식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가 대표적인 예다. 서구-일본-한국의 관계에 모더니즘-양식건축-전통건축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곳이 한국근대건축의 역사다. 일본인이 1934년에 세워 일본 영화를 주로 상연하다 해방 후 국립극장으로 변신했다가 지금은 명동예술극장이 된 ‘명치좌’와 서울 도심을 남북으로 내달리며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이제는 쇠락해 정치적 결정에 운명이 걸린 ‘세운상가’를 나란히 다뤄야 하는 것이다.

골치 아픈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 근대건축물은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유적과 문화재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국내법에 따르면 50년이 지나야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다. 그러니까 1964년 이후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운명은 건축주의 호의와 감식안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건축주가 바뀌었지만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사옥’처럼 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스칼라극장처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철거되는 경우가 더 많다. 보존과 기록을 위해서는 옥석을 가리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오랫동안 살아 남았다는 사실이 그 건축물의 가치를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룬 전시회가 최근 개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23일 개막한 ‘장소의 재탄생:한국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전이다. 근대운동의 건물, 장소, 지역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국제위원회인 도코모모(docomomo) 세계대회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것에 맞춘 전시다. ‘권력의 이양’ ‘풍경의 재현’ ‘주체의 귀환’ ‘사라진 기억’ ‘연결될 미래’라는 소주제 아래 19세기말 개화기 시절의 건축물에서부터 일제 식민지 시기를 비롯해 1960~70년대의 주요 건축물까지 아우르고 있다. 사라져 버린 예도 다루지만, 살아남은 것 그 중에서도 용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거나,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한 건축물에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는 한국근대건축사의 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비판적 평가와 논쟁적 이슈를 제기하기보다는 극적인 변화를 겪으면서도 우리 곁에 있는 건축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조선시대-일제 강점기-현대 건축물이 나란히 자리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한국의 근대건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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