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홍도 앞바다에서 유람선 좌초’. 세월호 참사 168일째인 어제 아침 긴급뉴스에 국민들은 또다시 공포에 떨었다. 곧 ‘승객ㆍ승무원 110명 전원구조’ 소식이 전해졌지만 오보가 아님을 거듭 확인하고서야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나 사고 유람선이 선령 27년 된 고물선이었다는 등 문제점이 속속 밝혀지자 안도는 분노와 한탄으로 바뀌었다.
이른 아침 홍도 해상유람에 나선 171톤급 바캉스호가 암초에 부딪쳐 좌초한 것은 오전 9시9분쯤. 선착장에서 불과 110m 떨어진 곳이지만 풍랑이 거세 자칫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은 것은 신속하고도 차분한 대응이었다. 선원들은 사고 직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대피를 유도했고, 승객들도 침착하게 따랐다. 뒤따르던 유람선 썬플라워호의 무전과 승객의 112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인근 선박들에 구조명령을 내렸고, 사고대응 매뉴얼을 익혀뒀던 홍도 주민들도 힘을 보태 28분만에 탑승자 전원을 구조했다. ‘세월호 학습 효과’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러나 드러난 정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 혹은 관재(官災)의 성격이 짙다. 바캉스호는 1987년 일본에서 제작돼 운항하다 올 봄 국내에 도입됐다. 선령이 27년으로 세월호보다 7년이 많다. 바캉스호가 선박안전기술공단의 안전검사에서 운항적합 판정을 받은 것은 세월호 참사 이튿날인 4월 17일이었다. 특히 홍도 주민들이 위험성을 지적하며 운항 반대 탄원서까지 냈으나, 해경은 5월 운항 허가를 내줬다. 세월호 사고로 노후 선박의 안정성 문제가 부각된 상황이었는데도, 이명박 정부 당시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여객선 내구연한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무리한 운항도 도마에 올랐다. 바캉스호 선장 문모씨는 해경 조사에서 “사고 해역에 이르러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배가 밀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씨가 불과 보름 전 선장으로 부임했고, 바캉스호가 예정 항로를 벗어났다는 목격자 진술 등으로 볼 때 운항미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치된 구명조끼가 편하게 입기 힘들 정도로 낡아있었다는 승객들의 증언도 나왔다. 선박의 안전검사에서 운항허가까지 과정은 물론, 세월호 참사 이후 실시했다는 연안여객선 일제점검도 허술한 구멍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사고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의 안전의식은 크게 높아졌지만, 관계 당국과 업계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히 위험수위에 머물고 있음을 드러냈다. 수학여행과 나들이를 떠나며 안전과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텐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 곳곳에 도사린 ‘우리 안의 세월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유가 새삼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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