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인생 되돌아보는 내용
가사 직접 쓰고 8곡은 작곡까지
"2,3년 전부터 정신차리고 음악,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질 거예요"
“이제 음악인이 돼가는 것 같아요.”
전인권(60)이 음악인으로 2막 1장을 맞고 있다. 그룹 들국화 해체 후 최근 ‘전인권밴드’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 ‘2막 1장’을 낸 그는 “예전엔 방탕한 생활을 하느라 내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는데 2, 3년 전부터 정신 차리고 음악을 하면서 음악이 정말 재미있고 세계에 뒤떨어지지 않는 음악을 한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9월 19일 발매된 앨범엔 일찌감치 공개한 ‘내가 왜 서울을’ ‘사람답게’ ‘눈물’ 등 11곡이 실렸다. 직접 작곡한 것이 8곡, 피아니스트 정원영이 작곡한 게 3곡이다. 가사는 모두 전인권이 썼다. 마약과 수감생활로 진창이 됐던 시기를 힘겹게 지나서일까. 들국화 시절처럼 포효하는 표범의 혈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차분하게 인생을 돌아보고 세상을 관조하는 곡들이 많다. “가장 힘들 때인 5, 6년 전에 쓴 것도 있고 최근에 쓴 곡도 있어요. (들국화 멤버였던) 주찬권이 세상을 떠난 뒤 기타만 잡고 살았는데 그게 곡 만드는 데 도움이 됐어요. 장담하건대 들으면 들을수록 좋을 거예요.”
요즘 전인권은 전성기 시절에 근접한 소리를 내고 있다. 마약에서 벗어난 뒤 매일 노래 연습을 하며 실력과 자신감을 얻은 결과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1년4개월 그리고 이후 3년째 그는 마약은 물론 술도 끊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 쉰이 넘으면 자제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땐 그걸 못해서 무시무시한 경험을 했어요. 출소한 뒤 2, 3년 있다가 정신병원에 갔어요. 교도소가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대상포진과 신경통에 시달리던 때 병원을 다니며 마약류 약물을 처방 받아 복용했던 전인권은 이제 진통제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아파도 끝까지 버텨내는 건 (들국화 멤버인) 최성원이 인정해줄 정도로 이력이 났다”고 했다.
전인권은 2년 전 드러머 주찬권의 제안에 따라 최성원을 설득해 들국화를 14년 만에 재결성했다. 그러나 두 사람 관계는 변함 없었다. 들국화 해체의 결정적 원인이었던 두 사람의 싸움은 “사소한 이유”로 반복됐다. “성원이와 저는 기본적으로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자기 몫을 찾는 방법에 있어서 서로 방법이 다르면 싸우게 돼요. (들국화 재결성 앨범에 있는) ‘재채기’에도 썼고 성원이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싸우는 건 우리가 만들어낸 유령이 싸우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싸우자고 말이죠.”
화려하게 다시 핀 들국화는 금세 시들고 말았다. 전인권과 최성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던 주찬권이 앨범 제작 도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들국화는 다시 해체 상태로 돌아갔다. “거의 해체라고 봐야 해요. 성원이가 전인권밴드에 들어올 리 없고 제가 최성원밴드에 들어갈 일도 없으니까요. 전 생각이 없어요.”
전인권은 지난 40년 음악 인생 전체가 콤플렉스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히피처럼 자유롭게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콤플렉스. 그래서 그는 이제 후배 신석철(드럼ㆍ기타), 민재현(베이스), 송형진(트럼펫), 양문희(키보드)와 함께 전인권밴드로 음악 인생 2막 1장을 펼쳐 보이고자 한다. 전인권밴드의 서울 공연은 11, 12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열린다.
“한동안은 정말 죽고 싶었는데 이젠 오래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적당한 시기엔 모든 걸 접어야죠. 새 앨범이 나오는 시기는 내년쯤으로 보면 될 겁니다. 대중에게 가까이 가서 대중의 애환을 그려내 보고 싶어요. 그게 행복이겠죠. 30년 넘게 밴드 활동을 했어요. 전인권밴드든 들국화든 음악 인생을 밴드로서 멋지게 끝내고 싶어요. 이 땅에 정말 좋은 밴드가 있었다는 말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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