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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겪고도… 27년 된 고물선의 위험한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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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겪고도… 27년 된 고물선의 위험한 항해

입력
2014.09.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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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해상서 유람선 암초 걸려 좌초, 30분 만에 110명 전원 구조 불구

높은 파도에도 무리한 운항 등 여전한 안전 불감증 또 드러나

30일 오전 전남 신안군 홍도선착장 인근 해상에서 유람선 바캉스호가 좌초되자 근처에 있던 어선들이 바캉스호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탑승객 110명은 30분 만에 전원 구조됐다. 홍도=연합뉴스
30일 오전 전남 신안군 홍도선착장 인근 해상에서 유람선 바캉스호가 좌초되자 근처에 있던 어선들이 바캉스호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탑승객 110명은 30분 만에 전원 구조됐다. 홍도=연합뉴스

“갑자기 ‘꽝’하는 굉음과 함께 배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어요. 머리 속에선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며 이대로 죽는 건가 온 몸이 얼어붙었어요.”

30일 오전 9시 14분 전남 신안군 홍도선착장 동쪽 200m 해상에서 유람선 바캉스호(171톤ㆍ홍도선적)가 수중암초에 걸려 좌초됐으나 다행히 30분 만에 탑승객 110명(승객 105명, 승무원 5명) 전원이 구조됐다.

오전 7시 20분 홍도항을 출발한 바캉스호는 홍도 인근 기암절벽 해상 관광을 일주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코스인 기암괴석 만물상에 좀 더 가까이 배를 접근하려다 암초에 좌초, 유람선 선미가 물속으로 잠기는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해경은 전했다. 다행히 사고 소식을 접한 다른 유람선과 어선들이 신속하게 접근해 탑승객을 모두 구조하며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목포한국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는 정모(58·여·경기 군포)씨는 “넘어지면서 쇠파이프에 머리를 다쳤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날 사고로 부상을 입은 승객 23명이 목포한국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중 5명은 입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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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세월호 참사 부를뻔한 안전불감증

홍도 유람선 바캉스호의 아찔한 사고는 세월호 참사 이후 여객선과 유람선의 안전 점검을 강화했다지만 실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냈다.

이 유람선은 선령 27년으로 세월호 보다 더 오래된 낡은 배다. 주민들이 “위험하다”며 관계기관에 탄원서를 냈지만 지난 5월 해경의 허가를 받아 운항을 시작했다.

이날 홍도 인근 해상엔 파도가 높았는데도 유람선이 무리하게 출항을 했고, 선장의 운항 미숙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사고 선박 인근에서 운행하던 유람선 썬플라워호의 김준호(64) 선장은 “파도가 높아 위험할 것 같아서 섬 일주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고 선박의 문모(59) 선장은 목포해경 조사에서 “당시 해상에 파고가 1m 정도 일어 운항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사고 해역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강한 바람으로 배가 바위 쪽으로 밀렸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대부분의 유람선 선장은 홍도 주변 해역을 잘 알지만 사고 유람선 선장은 외지인이라 암초 위치 등을 정확히 모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도 기암괴석 쪽으로 무리하게 다가가다가 미처 암초를 발견하지 못해 일어난 것으로 해경은 추정하고 있다.

사고 직후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찾아 입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한 승객은 “구명조끼를 꺼내기도 어려웠고 너무 낡아 혼자 입을 수가 없어 승객들이 서로 입혀줘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사고 당시 한 승객은 “119에 전화 걸어 “사고 났다”고 몇 번 소리쳤지만 “어디냐”고만 계속 물어보다 통화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남도소방본부는 “오전 9시 9분 19초에 119 신고가 접수됐으나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무응답이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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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세월호 참사를 막은 신속한 구조

홍도 주민들의 신속한 대응이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사고 현장 인근에 있던 유람선 썬플라워호 김 선장은“파도가 높아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고, 사고 선박 앞부분이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가 사고를 직감했다”면서“해경홍도출장소와 주변 선박에 즉시 알리고 구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썬플라워호는 바로 사고 선박에 접안해 80여명의 승객을 옮겨 태웠다.

홍도는 30년 전인 1985년 유람선‘신안 2호’침몰사고로 승객 18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주민들은 신안2호 사고 이후 신속한 대응을 위한 매뉴얼을 운영하고 있다. 김 선장이 무전으로 위험을 알려오자 홍도항에선 사이렌이 울리면서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썬플라워호와 함께 홍도항에서 대기한 선박 8척도 사고현장으로 출동해 구조작업에 나서, 헬기와 함정 등 해경도움 없이 30분만에 승객 전원을 구출했다. 부녀회원들은 환자발생을 대비, 담요와 따뜻한 차를 준비해 구호활동을 벌였다. 홍도1구 이장 김근영(43)씨는“30년 전 참사를 교훈 삼아 평상시 몸에 익힌 대응 매뉴얼이 대형사고를 막았다”고 말했다.

사고 선박의 선원들도 승객을 버리고 도망갔던 세월호 선원들과는 달리 적극 구조에 나섰다. 배가 침수되자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신속히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어라”고 전파했다. 우왕좌왕하는 승객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입혀주며 맨 위층으로 올라가라고 대피를 유도했다. 선원들은 다른 유람선과 어선들이 와 구조할 때까지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바캉스호의 선장과 선원 5명은 다른 선박을 통해 승객들이 모두 구조될 때까지 유람선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있었다.

목포=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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