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족처럼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있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 사는 한인 수잔 염씨 얘기다. 1일부터 메릴랜드에서는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사고를 내면 중형으로 단죄하는 이른바 '제이크 법'이 시행됐는데, 법이 마련되기까지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염씨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2011년 12월 그는 다섯 살 된 제이크를 태우고 운전 중이었다. 제이크가 비디오게임에 흠뻑 빠져 있을 때 뒤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들이 받았다. 20대 청년 데빈 맥키버는 휴대폰을 사용하느라 앞을 보지 못했고 브레이크도 밟지 않았다. 사고로 제이크가 숨졌으나 당시 법규는 통화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도 별다른 처벌 법규가 없었다.
결국 1,000달러만 내고 풀려나는 맥키버를 보며 분노했던 염씨는 아들과 같은 희생자가 더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데로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통화사고를 음주운전 사고처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법 개정 운동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염씨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통화 운전으로 2초만 눈을 떼는 것도 사람 목숨을 희생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제이크를 위한 변화 재단’이란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여론에 호소하고 지역구 출신 의원들 설득에 나섰다. 긴 시간 캠페인을 통해 마침내 부모들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 여론이 조성됐다. 여론은 법안이 마련되고 공청회를 거쳐 상ㆍ하 양원을 통과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렇게 해서 통화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벌금 5,000달러의 중범죄로 처벌하는 제이크 법이 마침내 발효됐다. 경찰에게는 통화사고 운전자의 휴대전화 사용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법 시행을 앞둔 지난 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염씨는 “우리 가족은 더는 다른 가족들이 아들, 딸, 엄마 그리고 아빠를 예방 가능한 사고로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아들 제이크 사망의 교훈을 법으로 만들어 내기까지 염씨가 들인 노력은 3년 가까이 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이제 170일이 되어 간다. 일반인들은 피로감을 느낄 지 모르나 유족들로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가 국가의 국민 안전과 보호역할에 대한 파산선고이자, 정부의 미숙함이 폭로된 것으로 규정되는 마당에 유족들의 감정은 염씨가 느꼈을 허망함이나 분노 이상이다. 물론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내 후세들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유족들의 뜻일 것이다. 사실 국가 존재가 희미해진 가운데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는 염씨와 같은 엄마, 아빠가 더 많아야 교훈이 된다. 하지만 유족들이 또 다른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길로 나아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변화 대상이나 영역도 넓다.
그런 점에서 국회에서 진통 끝에 처리된 세월호특별법을 통한 참사의 진상과 책임자 처벌은 세월호 교훈을 위한 최종 목적지가 아닐 수 있다. 특별법상의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걸려 여론은 쪼개져 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었다면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 벌어질 모든 잘못된 일의 책임이 최근의 세월호 논란 때문이라는 책임 공방이 벌어졌을 것이다.
미국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때 20여 차례 진상조사 청문회가 열리고 300여명이 증언을 통해 카트리나 재해 진상이 드러났다. 하지만 피해주민들은 카트리나의 역설을 피하지 못했다. 재난이 정비되자 그 결과로 인해 저소득자나 빈민은 설 자리를 잃고 난민이 돼 도시 밖이나 다른 주로 떠밀려 가야 했다. 경우는 다르지만 예상치 못한 세월호 참사에서도 유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여당이 아닌 야당이 홍역을 치렀고, 비즈니스 차 방한한 미국 변호사는 한국 기업들이 세월호 파장 때문인지 ‘펑크’가 난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세월호로 갈라진 사회 분위기나, 갇힌 정국을 풀어갈 힘을 가진 이들은 이번 세월호법 처리에서 보듯 피해자인 유족이다. 그리고 유족들은 국민들이 계속해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도록 해야 앞으로 세월호의 교훈을 만드는 일에서 여론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제이크법 시행 소식에 미국인들이 “아들 제이크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간 염씨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태규 기획취재부장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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