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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상업시설로 변경 어렵고 부동산 침체… 10차례 유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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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상업시설로 변경 어렵고 부동산 침체… 10차례 유찰도

입력
2014.09.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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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료 등 특정 목적 입지규제, 기업들 매수 꺼리는 최대 장애물

지자체에 용도 변경 요청해도 감정가 차액 요구에 차일피일

남양주종합촬영소의 가을. 남양주 종합촬영소 홈페이지 제공
남양주종합촬영소의 가을. 남양주 종합촬영소 홈페이지 제공

#.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 따라 2011년부터 경기 용인의 3만7,417㎡ 규모 사옥과 부지를 매각하려던 에너지관리공단은 입지규제 때문에 입찰이 4번이나 유찰되자 이듬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애초 용인시로부터 해당 부지를 에너지관리공단의 업무시설로만 사용 허가를 받은 터라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보고 시에 용도변경을 요청해 의료, 교육연구, 운동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규제를 푼 것. 하지만 이후 진행된 여섯 번의 추가 입찰에서마저 응찰자가 없었다. 수세에 몰린 공단은 지난 4월 오피스텔도 허용해달라며 용인시에 재차 용도변경 신청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당혹스러웠다. 오피스텔을 짓게 해주는 대신 새롭게 산정될 감정가과 이전 감정가의 차액을 보상하라는 것이었다. 실제 매각가를 알 수 없는데 감정 차액을 달라는 요구를 들어 줄 경우, 자칫 최종 매각액이 새 감정가보다 낮기라도 하면 공단은 꼼짝 없이 손해를 보게 될 상황. 용도변경을 무기로 이익을 얻으려는 시의 압박에 공단은 난감한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최종 매각가와 과거 감정가 차액 정도는 낼 수 있지만 감정가 차액을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토로했다.

#. 영화진흥위원회의 남양주 촬영소는 총 138만1,278㎡에 이르는 넓은 부동산과 1,000억원이 넘는 감정가, 영상업무에 최적화된 시설과 구조 등이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 웬만큼 큰 기업이 아니고서는 매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데다, 세트장 녹음실 스튜디오 등 각종 설비가 가득해 일반 업무시설로 활용도도 떨어진다. 더욱이 부지 대부분이 수도권정비계획상 자연보존구역에 수질오염총량규제 등 입지규제도 중복돼, 이를 감수하고 매입에 나설 곳은 사실상 없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공개입찰을 포함해 최근까지 진행된 총 19차례 협상도 모두 허사였다.

촬영소 매각이 미뤄지자 진흥위는 2012년 부산에 이전 부지를 매입하고도 신사옥 착공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현재 일부 인력만 부산 센텀시티에서 곁방살이를 하고 있다. 진흥위 관계자는 “애초부터 팔리기 어렵다고 봤지만, 정부는 연수원이나 대학원 등의 활용가치를 내세우며 밀어붙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09년 첫발을 뗀 지방이전 공공기관의 부동산 매각이 지지부진한 근본 요인은 공급과잉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기관마다 다른 속사정이 있다. 일각에선 ‘용도를 바꿔 돈을 벌려고 한다’, ‘지방이전을 미루려는 꼼수’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해당 기관들은 모르는 소리라고 하소연한다.

매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입지규제’다. 부지가 연구ㆍ방송통신ㆍ의료 등 특정 목적으로만 활용하도록 허용한 도시계획시설 규제에 묶였거나 자연녹지 등으로 설정돼 주거나 상업시설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팔리지 않은 공공기관 45곳 중 10곳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 경기 의왕시에 자리한 한국농어촌공사의 부동산 부지 12만4,694㎡는 대부분 자연녹지로, 용도변경 부담 때문에 기업들이 매수를 꺼리면서 작년 한해 동안 총 9차례나 유찰됐다. 이 과정에서 공사는 주거지역으로 변경해달라는 의사를 시에 수 차례 전달했지만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고심 끝에 공단이 내놓은 해법은 매수자들이 계약 후 일정기간 이내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보장한 ‘리턴제’. 새 주인이 안전하게 용도변경 가능성을 타진해 볼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계약 후 1년 10개월 안에 매수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 더 이상 팔 방법이 없다는 판단 하에 나온 궁여지책”이라고 말했다.

입지 조건이 열악해 거들떠보지 않는 곳도 있다. 올 6월 전남 나주로 이전한 국립전파연구원은 서울 용산에 자리한 옛 청사의 진출입로 소유주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기관인 우정사업본부로 돼 있어 난항을 겪고 있다. 즉 연구원을 드나들려면 우정사업본부의 땅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두 곳 모두 정부소속 기관이라 문제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부지가 민간에 매각될 경우, 새 주인은 우정사업본부에 매년 수억원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 판이다.

입지는 좋지만 주변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곤혹스러운 곳도 있다. 여의도 사옥을 그대로 둔 채, 지난 7월 경남 진주로 이전한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대표적이다. 주변에 서울국제금융센터(IFC) 한국거래소 증권사 등이 밀집해 있어 알짜부지로 평가 받지만 올 2분기 인근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이 20%를 훌쩍 넘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면서 매각이 지지부진하다. 같은 오피스 권역으로 묶인 신용보증기금 역시 서울 공덕역 인근 사옥이 총 여덟 차례 매각에 실패하면서 최근 수의계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처럼 상당수 공공기관이 매각 지연으로 고통을 받자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지난 5월 국무회의를 통해 부지 형태가 불규칙하거나 도로, 상하수도 설치 및 정비 등의 필요가 있을 때 부지 밖의 토지를 포함해 활용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관련 개정법률을 통과시킨 것. 하지만 지자체와 공공기관 간 갈등조정이나 지자체가 권한을 가진 입지 규제완화 등 매각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에 대한 처방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미매각 부동산 매입을 담당하는 토지주택공사(LH),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농어촌공사 등 공기업들도 한창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 지원에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재순 한국부동산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부동산 분야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담 태스크포스를 꾸려 매수희망자와 협상 과정에서 법적ㆍ절차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무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용도변경 등 도시계획규제의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자체, 기관 등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매입공공기관들이 직접 나서기 힘들다면 좀 더 좋은 조건에 팔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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