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0대 대기업이 국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고, 최근 들어 극소수 초대형 기업의 성장세만 두드러진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매출과 수익성에서 대기업과 중소ㆍ중견기업 간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추세이고, 대기업 가운데서도 큰 돈을 버는 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뿐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어제 발표한 ‘기업집단의 경제적 비중과 시장지배력’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상위 30개 기업이 제조업에서 점하는 비중이 45.5%에 달했다. 1970~1980년대 초까지 35%수준이었다가 1990년 중반에는 40%선이었다. 이재형 KDI전문위원은 “2000년대 후반부터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서 극소수 초대형 기업의 성장세는 두드러진 반면, 여타 기업들의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최근의 상황까지 감안하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30대 기업 전체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두 쌍두마차로의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 제조 대기업들의 지형을 크게 바꿔놓았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기존 30대 대기업 가운데 절반 가량이 무너지면서 살아 남은 기업들은 원화가치 약세로 인한 환율 효과를 바탕으로 수익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혹독한 환경에 직면해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제조업의 중요성이 재평가되면서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이 자국 제조업 되살리기에 여념이 없는데다, 이미 공룡으로 성장한 후발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는 탓이다. 원화 강세의 흐름 속에 조선 전자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 전반에 걸쳐 중국과의 전면전이 벌어지면서 주요 기업의 영업이익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간판 격인 삼성전자마저도 중국 업체와 미국 애플의 협공 속에 수익이 급감하고, 현대차도 엔화 약세를 등에 업은 일본업체들과의 경쟁으로 이익이 줄어 나라 전체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제조업은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의 근간이다. 하지만 온 나라가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의 실적만 바라보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고 당장 30대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추가로 여럿 나오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소수의 초대형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제조업 구조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부품 소재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을 육성하면서 산업구조 개편과 체질 개선을 서두를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재계와 머리를 맞대고 기업환경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혁파,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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