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복식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28년 만의 아시아 정벌이다. 자칫 노 메달로 고개를 떨굴뻔한 테니스계가 활짝 웃었다. 그 중심에 임용규(23ㆍ당진시청)와 정현(18ㆍ삼일공고)이 있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테니스대표팀은 이들 남자복식조만 남겨두고 모두 짐을 쌌다. ‘마지막 보루’ 임용규-정현은 29일 인천 부평구 열우물 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복식 결승에서 사남 싱-사케스 미네니(인도)를 2-0(7-5 7-6)으로 제압하고 정상에 섰다. 한국이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1986년 서울 대회 김봉수-유진선 이후 처음이다. 테니스 금메달은 2006년 도하 대회 남자 단체전 이후 8년 만이다. 아울러 임용규-정현은 2010년 광저우 대회에 이어 ‘노 골드’ 위기에 몰렸던 한국의 자존심을 세웠다. 경기 내내 자리를 지킨 주원홍(58) 대한테니스협회장은 “한국테니스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멋진 한판이었다”고 가슴 떨린 소감을 밝혔다.
비 때문에 3시간30분 가량 지연 개시됐지만 임용규-정현은 전날 유키 밤브리-디비즈 샤란(인도)에게 역전승을 거둔 여세를 몰아갔다. 첫 세트 6-5가 될 때까지 상대와 각자 서브 게임을 지켜내며 팽팽하게 맞서던 중 임용규-정현이 상대의 게임을 빼앗아와 1세트를 가져갔다.
상승세에 발목을 잡은 건 또 날씨였다. 2세트 5-5 상황에서 빗줄기가 굵어지는 바람에 경기는 중단됐고 1시간 후에 재개됐다. 자칫 경기흐름을 빼앗길 수도 있었으나 임용규-정현은 재개 직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임용규-정현은 6-6으로 맞선 타이브레이크에서 5-1까지 앞서가며 인도를 몰아붙였고, 승리가 확정된 순간 얼싸안고 감격의 순간을 나눴다.
임용규와 정현은 어린 나이에 한국 테니스의 대들보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라켓을 잡은 임용규는 국내 주니어 최고 권위의 대회 장호배에서 4연패하며 이름을 알렸다. 고등학생이던 2009년 인도 퓨처스에서 우승, 당시 고교생 최초로 퓨처스 대회 우승 기록을 남겼고 그 해 국가대표로 발탁돼 테니스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에도 나섰다. 2010년 7월 세계랭킹 298위까지 오르며 거침없이 성장하던 임용규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2010년 9월 데이비스컵 경기 도중 발목 인대가 끊어지며 6개월간 코트를 떠난 것. 한 차례 복귀 뒤 2012년 3월 오른쪽 발등 뼛조각 제거 수술도 받아 또 다시 4개월을 쉬어야 했다. 힘든 재활을 마치고 지난해 6월 창원 퓨처스와 김천 퓨처스, 7월 유니버시아드 단식에서 잇따라 정상에 서며 금메달을 예고했다.
정현은 아버지인 정석진 삼일공고 코치, 형인 건국대 테니스선수 정홍 밑에서 자란 ‘테니스 가족’이다. 6세에 테니스에 입문한 그는 지난해 윔블던 주니어 남자단식에서 준우승하며 스타덤에 오른 뒤 퓨처스 대회 단식에서 우승, 올해는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컵 3개를 더 보태며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올해 8월에는 메이저대회 US오픈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한국 남자 선수가 메이저대회에 출전한 것은 2010년 호주오픈 임규태 이후로 처음이었다. US오픈 후에는 방콕오픈 챌린지에서 우승, 국내 남자 선수 최연소로 챌린지급 단식을 제패한 선수로 기록됐다. 수많은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정현은 “그래도 이렇게 큰 대회에서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꿈이 아니길 바랄 뿐”이라며 고교생 티가 벗겨지지 않은 순수한 감정을 드러냈다. 임용규는 “비가 왔지만 오히려 이후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형다운 여유를 보였다.
인천=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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