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주’를 보았다. 대학 다닐 때 종종 답사를 다니고는 했던 도시다. 여기저기 흩어진 불상과 탑을 찾아서 한참을 헤매 다녔다. 비석 탁본을 뜨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도 했다. 그 때 기억으로 경주는 낮고 평평하며 음식이 맛없는 도시였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나도 왕릉에 한번 올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죽음의 언덕을 기어오르는 기분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창 밖으로 무덤이 보이는 집에서 산다면 삶이든 죽음이든 더 잘 실감할 수 있을지도.
난민들이 머물 곳이 없어 공동묘지에 몰래 숨어들어 산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밥을 먹고,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사랑을 나누고,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아이들이 뛰어 논다고 했다. 죽음의 정원과 삶의 현장이 한곳이었다. 삶과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한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분명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영화 속 주인공이 거니는 경주라는 도시에서도 그렇다. 문제는 삶과 죽음이 아니라 집착과 고통 같은 게 아닐까. 풀숲으로 걸어 들어간 우리의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따라 들어가는 우리들의 두 눈은 무엇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일까, 또는 혹독하게 닫혀 있는 것일까. 오늘 복원 가능한 것들 위에 우리가 덩그마니 앉아 있다. 그리고 시계는 경주에서도 서울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그대로 우리들의 몫으로 남긴 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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