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때 출동 상담원 턱없이 부족, 재학대 가능성 평가 척도도 미완성
전문심리치료사 등 사후관리도 부재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울산과 칠곡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남이 개입할 수 없는 가정 내부의 일’, ‘교육적으로 불가피한 체벌’ 등으로 여겨졌던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결과 아동학대 범죄자의 처벌 강화와 피해 아동에 대한 신속한 보호를 골자로 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고, 29일부터 시행된다.
법과 제도가 바뀌었지만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신속한 초기 대응과 원활한 사후관리가 이뤄질 수 있을지 현장의 우려는 크다. 당장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현장에 동행 출동해야 하지만 상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학대 위험성을 평가ㆍ공유하는 지표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28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기관 등에 따르면 ‘아동학대범죄행위자 및 학대피해아동 처분을 위한 아동학대위험도 평가척도’가 아직 개발 중이다. 평가척도는 상담원과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목격하고 들은 것을 적어 아동학대와 관련해 일관성 있는 상황 판단을 내리고,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하기 위해 필수적인 항목이다. 법무부가 예산 1,500만원을 들여 중앙아동보호기관과 올해 6월 연구 용역을 맡겼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피해아동을 원가정으로 복귀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재학대 가능성’ 평가 척도도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
중앙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아직 평가 척도를 지역아동보호기관에 보내 신뢰도와 타당성을 검증하진 못했다”며 “적어도 1년은 해야 할 연구를 5개월 만에 급하게 진행하게 돼 평가척도가 현장 의견과 괴리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특례법 시행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접수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조사 권한을 받아 ‘지체 없이’ 출동해야 하지만 경찰과 보조를 맞출 인력은 턱 없이 부족하다. 한선희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그 동안 상담원들은 인력부족 때문에 12시간 내에 출동해야 했던 기존 규정도 지키는 것이 힘든 상황이었다”며 “전화로 피해아동의 안전을 체크하며 다음날 현장 출동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전남 지역 보호기관 3곳에서 관할경찰서 21곳과 지구대 206곳의 동행 출동 요구를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 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상담원 부족 문제는 26일 열린 전국 50곳 아동보호기관장 회의에서 예산 문제와 함께 주로 논의된 안건이기도 했다. 한 관장은 “피해아동은 초기에 누가 어떻게 상담ㆍ조사하느냐에 따라 진술하는 학대 내용이 크게 차이난다”며 “진술이 왜곡되지 않도록 경찰의 학대예방 교육 정례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학대 피해 아동의 종합심리검사를 할 수 있는 전문 심리치료사도 부족해 사례관리(사후관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아동보호기관에 따르면 현재 종합심리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임상심리치료사(2급ㆍ석사 학위 소유자) 자격을 가진 전문가는 10명 미만이다. 낮은 처우에 지원자가 적어 회당 25만~30만원에 이르는 심리검사비를 주고 외부 심리검사센터에 의뢰한다는 게 아동보호기관의 설명이다. 이영선 남양주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팀장은 “그동안 심리검사비는 시 보조금으로 충당해 왔는데 학대행위자에게도 의무화된 심리치료에 별도의 정부 예산 투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대를 인지하거나 알리기 힘든 영유아에 대한 학대방지책도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기관장은 “영유아에 대한 학대를 조기 발견하고 예방하려면 가정에 들어가 모니터링하는 수밖에 없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가정방문서비스가 의무화돼야 하는데 아직 국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특별한 사유 없이 영유아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가정 등 아동학대ㆍ방임이 의심되는 가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관장은 또 “영유아건강검진 때 체크 항목을 넣어 아동학대 조기발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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