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에서 오는 오류
단기효과의 조급함 버려야
기초과학 체질개선 계기로
20년 전 세탁기 이름에 등장해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카오스’는 ‘나비효과’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나비효과는 북경 하늘에서 나비가 일으킨 날갯짓이 뉴욕의 폭풍을 유발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한 기상학자가 다가올 날씨를 예측하는 모형을 개발하면서 현재의 날씨값을 아주 조금 바꾸니 며칠 뒤의 날씨는 완전 다른 세상이 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 나비효과의 시작이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은 아주 미미하지만, 앞으로 가져올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즉 북경에서 바람이 형성된 초기 단계에서의 조그마한 조건 변화가 마지막 결과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필자는 ‘카오스’나 ‘나비효과’라는 용어에 아쉬움이 많다.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나 폭풍우를 몰고 온다는 나비효과는 둘 다 부정적인 미래를 담고 있다. 폭풍이 아니라 화창한 날씨를 만들 수도 있는데 굳이 어두운 이야기로 끝난다. 보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나아가 머릿속에 오래 남을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슬프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쉬울 리야 없다. 작은 나비 한 마리까지 생각해야 하는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현재의 수준까지 온 것도 수많은 과학기술인들의 땀이 어려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기상예측을 위해서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나비 뿐 아니라 파리나 참새의 날갯짓도 뉴욕 하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가 내지르는 고함이 바다 건너 꼬마 아이의 소풍을 망쳐버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많은 것을 생략하고 단순화시켜 생각한다. 얼기설기 얽혀 있는 관계들을 무시하고, 거기에 담긴 정보들을 임의로 없애버린 뒤 판단한다. 시장에서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언제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항상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가정 하에 경제 현상을 분석하곤 한다.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이며 정작 중요한 선택은 순간적으로 이뤄진다는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고려한 분석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는 단순화시켰던 것들을 조금씩 복원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1929년 세계 경제대공황이 오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이 가장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그리고 가계나 기업 이외에도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공산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능확대를 주장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도리어 이와 같은 주장은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 했고, 2차대전 이후에는 케인즈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국가를 찾는 것이 도리어 힘든 상황이 됐다. 케인즈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아이디어를 잊어버리는 것이라 했다. 그 동안 우리는 단순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원인과 결과가 아주 간략하게 설명되고 서로 명확하게 연결돼야 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원이 투입되면 곧바로 성과가 나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원의 투입에 따른 단기적인 직접 효과는 중히 여겨지고,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영향이나 효과는 뒷전이기 십상이다. 창조경제의 실현 역시 단지 잠깐 동안의 창업 활성화에 치중한다면 일시적으로 화창해질지 모르지만, 한 마리의 나비로 인해 다시 먹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갖게 되는 허약체질이 개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다음 주면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인천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의 메달 경쟁에선 일본을 앞설 수 있지만, 노벨과학상은 일본이 우리보다 한참 앞서있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글로벌 기업, 강소기업, 히든챔피언을 비롯한 튼튼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일본의 경쟁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쌓아온 과학기술 경쟁력, 특히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가 바탕이 됐다. 세계 수준의 기술과 산업 경쟁력은 초기조건이라 할 수 있는 기초과학의 역량에 기반한다. 초기조건이 조금만 변해도 이후 일어나는 변화의 폭은 엄청나게 크다는 나비효과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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