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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대행사 계좌로 입금했다고 "계약무효"…쫓겨난 입주자들

입력
2014.09.28 20:13
수정
2014.09.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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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산신탁 양주 아파트 대행사 내세워 분양 후

18개월간 임대료 채근조차 없다가 공매 구실로 일방적으로 퇴거 요구

분양대행사에 집값을 냈다는 이유로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난 이들이 얼마 전까지 살던 아파트 단지 안에 모였다. "열쇠까지 분양대행사에 믿고 맡겼으니까 저희가 받았을 텐데 분양대금은 전달 못 받았다니 말이 되나요?".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성봉(48 경기도 양주시)씨는 직업군인이었다. 대구에 살다가 2005년 경기도 파주의 30방공관제단 전속발령을 받았다. 가족이 살 집을 찾아야 했는데 파주의 아파트들은 이미 많이 비쌌다. 지나가다 보니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있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한국자산신탁이 분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자산신탁이라면 공사 아닌가(2010년 민영화), 그는 믿을만하다고 생각했고 생애 첫 주택으로 주저 없이 그 아파트를 샀다. 뿐만 아니라 부대에서 관사가 부족해서 주택을 구매해야 한다고 할 때 이 곳을 추천해서 9채를 사게 했다.

그 해 8월 29일 잔금까지 치르고 단지 내에 있던 분양사무소에서 열쇠를 받아 입주를 했다. 그런데 집이 등기가 나오지 않았다. 분양사무실에 문의했지만 기다리라고만 했다. 당시 김씨가 입주한 성우헤스티아 아파트는 성우산업개발이 지었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한국자산신탁에 넘어갔다. 김씨는 두 회사 간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부부가 맞벌이다 보니 바쁘기도 했다. 차례대로 한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는 중에 2007년 3월에 우편물을 받았다. 이 집은 한국자산신탁 소유로 공매에 들어가니 비워달라는 통고였다. 1년 6개월 동안 그 비슷한 채근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 남의 집이라면 열쇠는 왜 내줬으며 억지로 들어와 살고 있다면 임대료 채근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제야 알아보니 이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322세대 가운데 101세대가 같은 공매 통고를 받았다. 집값을 일부만 내고 들어온 집이나 전세로 들어온 집도 있었다. 집값을 모두 내고 샀는데 공매통고를 받은 집은 김씨가 유일했다.

알고 보니 당시 분양을 대행한 지성하우징디앤씨에서 여러 종류의 계약서를 사용했다. 한국자산신탁이 뒤늦게 정식계약서라고 한 계약서를 쓴 경우에도 계약서에 명기된대로 입금하지 않고 직접 지불했으면 무효가 됐다. 김씨가 바로 이런 사례였다.

68세대가 분양대금 및 전세금 반환(소유권) 소송을 걸었으나 1, 2심에서 임대입주자들만 지성하우징디앤씨으로부터 임대금을 돌려받으라 했으나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이 됐다. 이어 한국자산신탁이 2007년에 89가구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인도(점유권) 소송에서는 1심에서는 입주자들이 대거 소송을 포기한 가운데 재판을 계속한 입주자 24세대가 승소했으나 2심에서는 24세대에서도 상황이 완전히 다른 입주자 3명만 승소했다. 다시 대법원에서는 3명 승소까지 파기환송하고 나머지는 기각했다. 완전히 기업편을 들어준 것. 김씨는 “소유권 소송 때는 입주자들이 뭐가 뭔지 몰랐다. 점유권 소송부터는 알고 대처했고 2심에서 재판진행이 편파적이라 법관기피신청까지 냈는데도 다시 그 재판부에 배당하는 것을 보고 결과를 예측했다. 대법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더라”고 말했다. 한국자산신탁은 2009년 다시 입주자들에게 산 기간만큼 돈을 내라는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도 냈다. 이 소송은 2심까지도 입주자들이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어졌다. 공교롭게도 입주자 손을 들어준 1, 2심 판결을 뒤집고 기업편을 든 두 건의 대법원 판결은 올해 1월23일 동시에 나왔으며 판사진도 똑같았다. 재판장이 신영철 대법관이었으며 배석판사는 이상훈 김용덕 김소영 대법관이었다. 기업편을 들어 입주자들이 재판부기피신청까지 냈던 점유권 2심의 재판장은 ‘도가니’사건에서 인화학교를 편들어준 이한주 판사였다.

김씨는 이 판결로 올 7월 초에 아파트를 나와 인근 빌라로 이사했다. 재판이 직장에 누가 될까 작년에는 군대도 상사로 예편했다.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때문에 2,000여만원을 더 물어줘야 할 판이다. 김씨를 비롯한 입주자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걸까. 다시 고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위해 판결문을 뒤져봤다.

일단 대법원 판결에서도 입주자들이 돈을 낸 사실은 인정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입주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식의 분양계약서’에는 ‘지정계좌로만 납부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걸 어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식의 분양계약서’라고 언급한 것은 여러 종의 계약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대법원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점유권 2심 판결(재판장 이한주)에서는 ‘정식의 분양계약서’가 아닌 계약서를 쓴 2명과 지정계좌로 계약금 일부를 낸 1명 등 세 사람만 적법한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 판결은 1)정식의 분양계약서를 쓰면서 계약금은 현장에서 분양대행사에게 직접 낸 사람 2)다른 분양계약서를 쓴 사람 3)정식의 분양계약서를 썼지만 돈은 일부만 지정계좌로 낸 사람의 잘못이 비슷한데 굳이 2, 3만 구제한 명확한 이유가 없으니 판사 맘대로인 판결이다. 대법원은 이것까지 파기환송했는데 판결문을 보면 3의 경우를 2로 잘못 썼다. 한마디로 논리도 없고 내가 대법관이니 내 맘대로 한다는, 역시 자의적인 판결문이다.

쫓겨난 입주자들은 모두 분양대행사인 지성하우징디앤씨에게 돈을 냈다. 이건 어느 재판부나 다 인정한다. 그래서 한국자산신탁이 지성하우징디앤씨과 풀어야 할 문제로 본 재판부는 입주자들의 소유권과 점유권을 인정했다. 반면 계약서에 지정계좌로만 넣으라고 했는데 이 계약서를 보고도 지정계좌로 넣지 않은 것은 입주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재판부는 한국자산신탁의 편을 들었다. 이렇게 혼선이 생긴 것은 성우산업개발이 부도나고 한국자산신탁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분양을 잠시 중단한 적이 있는데 은행부채에 시달리던 분양대행사가 분양을 지속하면서 지정계좌가 아닌 그들의 계좌나 그들에게 직접 입금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쫓겨난 입주자들은 계약 당시 이런 요구에 한국자산신탁에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문의하고 ‘된다’는 말을 듣고 따랐다고 한다. 만일 형사재판이었다면 검찰이 분양대행사나 한국자산신탁 혹은 일부 직원의 사기 여부를 수사해주었겠지만 민사재판으로만 진행되어서 법에 무지한 입주민들의 계약서와 은행거래 내역, 그리고 공통된 기억 외에는 증거가 없다.

핵심은 한국자산신탁과 분양대행사인 지성하우징디앤씨의 관계이다. 이들이 포괄적인 분양대행업무를 맡긴 것이 맞다면 소비자들이 분양대행사를 믿고 돈을 준 행위는 인정받아야 한다. 소비자들은 분양대행사를 상대했지 한국자산신탁을 직접 상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한국자산신탁이 과연 분양대행사의 행위를 알고 있었냐 여부이다. 물론 알고 있었다. 입주자들이 얼마를 어떻게 냈는지에 대한 상세한 명단을 분양대행사가 아닌 한국자산신탁이 점유권 소송 1심 재판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한국자산신탁은 입주자들이 분양대행사에 돈을 낸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또 한국자산신탁이 집 열쇠의 처분을 분양대행사에 전적으로 맡긴 것은 포괄적 대행을 맡겼다는 뜻이 된다. 분양대행사의 행위를 한국자산신탁이 알고 있었다면 입주자들을 내몰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된 돈은 분양대행사와 다퉈야 한다.

물론 계약서에 지정계좌로 입금하라고 되어 있는데도 분양대행사에 지불한 입주자들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김씨를 제외한 입주자들은 대부분 분양금 가운데 은행대출이 나온다는 5,000만원을 제외한 3,000여만원의 돈으로 입주한 상태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분양대행사에게 포괄적 분양대행을 맡기고 그들의 행위를 알면서도 버려둔 한국자산신탁의 책임은 전무한 채 입주자들에게만 책임을 미룰 수 있을까. 지정계좌 여부만 따지기에는 원칙에서 달라진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더구나 한국자산신탁이 대법원 확정 판결 이전에 사채업자처럼 입주자들 집에 무단침입하면서 집을 빼앗긴 것 이상의 충격을 받은 입주자들도 있다. 홍순구(42)씨는 “(공매통보를 받을 당시) 세 살이던 큰 딸이 갑자기 문을 따고 들이닥친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 예닐곱명을 본 충격 때문에 지금도 혼자서는 거실로 못 나온다”고 전했다. 김금자(56)씨는 물조차 길어먹어야 하는 움막에 살던, 남편의 생모를 위해 이 집을 샀는데 “(2007년 공매통고 후) 남자들이 들이닥치는 걸 보고는 어머님이 결국 움막집으로 되돌아가서 거기서 고생스럽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매통보를 받고는 어머님을 위해서 수의계약으로 재구매하겠다고 하는 과정에서 “이미 이 집이 다른 사람한테 팔렸는데 등기가 안되었다며 그 사람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놓았더라”고 했다. 그런데 등기부에는 2006년 3월 20일에 이 집이 가처분 접수가 된 것으로 나와있는데 정작 가처분 결정은 사흘 전인 3월 17일로 적혀 있다. 평범한 시민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이 아파트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모든 걸 입주민들이 풀어야 한다. 성혜심(52)씨는 전세금 1,800만원을 내고 2006년 9월에 입주해서 이듬해 3월에 공매통고를 받고 시달리다 11월쯤 강원 철원으로 이사 갔다. “전세금을 못 돌려받는 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부당이득금 540만원까지 내라고 한다. 억울해서 어떡하냐”고 했다. 이원조(78)씨는 재판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서 제 값을 다 내고도 공매공고가 나자 80% 가격에 수의계약으로 집을 재구매했다. “억울하지요. 그래도 집값이 1억3,000쯤 하니까 그냥 그 돈 냈다 하려고요. 나 같은 사람도 많아요” 했다. 한국자산신탁이 옳아서가 아니라 시비가 귀찮아서 재판을 피한 이들이 제법 된다는 뜻이다.

^지난 회(9월 29일자 28면 보도)에서 보듯이 행정부가 제대로 못해도 사법부가 제대로 해준다면 정의는 바로 세울 수 있다. 당시 대한건설협회가 신고한 불법면허 대여업체 10개 중에 그나마 약간 무겁게 처벌을 받은 곳은 1개 뿐이었다. 수십억을 번 업체도 겨우 세 군데가 고작 300만원에서 2,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 경우는 기소를 엄하게 하지 않은 검찰을 탓할 수 있지만 민사소송인 경우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점을 이용해서 서민의 고혈을 빠는 판결이 어딘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군산대 건축과 안홍섭 교수는 “사법부가 제대로 판결을 하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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