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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덴마크 현대극의 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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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덴마크 현대극의 노크

입력
2014.09.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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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센 ‘이 세상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남자’

감옥에서 평온함·자유 느끼는 가난한 무명 작가 이야기 다뤄

덴마크 작가 엘링 옙센이 쓴 연극 ‘이 세상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남자’는 역설적인 상황을 설정한 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끊임 없이 자문한다. 극단 유랑선 제공
덴마크 작가 엘링 옙센이 쓴 연극 ‘이 세상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남자’는 역설적인 상황을 설정한 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끊임 없이 자문한다. 극단 유랑선 제공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북유럽 연극 한 편이 한국에 도착했다. 19일 막을 올린 덴마크 작가 엘링 옙센의 ‘이 세상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남자’는 타자기 한 대와 평온함만을 간절히 원하는 무명 작가의 이야기다. 극단 유랑선이 ‘낯선 텍스트에서 문제를 끌어낸다’는 취지로 스웨덴 연극‘침입’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한 희곡이다. 덴마크의 현대 희곡이 한국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은 첫 장면부터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몇 달째 타자기 대여료를 내지 못한 무명 작가 알란은 법원에서 만난 채권자(타자기 주인)와 판사를 향해 “이미 타자기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대여료로 지불했는데 왜 타자기는 여전히 내 소유가 아니냐”고 따진다.

그는 윗집에 살고 있는 노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후에도 “타자기 한 대와 평온함이 보장된 감옥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며 즐거워한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외출도 마다한 채 자신의 ‘감방’에 남고, 간수의 열쇠를 훔쳐 안에서 문을 잠그는 등 연극은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시종일관 관객에게 화두를 던진다.

작품 속 역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알란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알란의 행동과 그가 던지는 질문을 곱씹다 보면, 관객은 ‘왜 여태껏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알란의 비현실성은 오히려 관습과 관행에 젖어있는 사회의 폐부를 찌르며 ‘진짜 현실적인 것’을 표현하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알란과 대조적으로 주변 인물은 극사실을 상징한다. 채권자는 대여료를 못 받는 대신 분실 보험금이라도 타내기 위해 알란에게 ‘타자기를 도둑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하게 한다. 돈을 주면 죄수와도 하룻밤을 보내는 창녀, 감옥을 나가고 싶어하는 동료 죄수 등 주변인물은 저마다의 욕구에 사로잡힌 갑남을녀의 모습을 나타낸다. 각각 1인3역으로 각 막에 등장하는 주변인들의 이름이 마이(1막), 브리트(2막), 마이-브리트(3막) 식으로 설정된 이유는 ‘다른 듯 같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무대도 현실과 비현실의 양단을 모두 담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사건이 전개되는 무대는 법원, 경찰서, 감옥 등 실재하는 장소지만, 무대의 테두리는 주인공이 처한 극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사막으로 표현했다. 알란이 항상 휴대하는 타자기는 배경이 바뀌어도 계속 등장하는데, ‘현실과 비현실의 연결’을 주장하는 연극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비유와 상징이 많아 어렵고 따분할 법도 하지만, 중간중간 유머 코드를 적절히 활용해 몰입도를 높였다. 서울 중구 세실극장에서 다음달 5일까지 공연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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