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 초 불거진 1군사령관 경질과 최근의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사퇴, 대통령 ‘말씀자료 소동’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연관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경질된 1군 사령관의 음주 소란은 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이던 6월 19일 발생했고 송광용씨는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 차 순방길에 오른 20일 사표가 수리됐으며 말씀자료 소동은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를 마치고 귀국하던 날 불거졌다. 대통령 순방 때마다 사달이 나다 보니 “대통령 순방을 줄이자”는 우스개 제안까지 나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 사건 공히 국정혼란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부터 처리까지 꼼꼼히 따져보면 상식은 물론 원칙과 질서마저 실종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1군사령관 음주 소란의 경우, 충격적이긴 하지만 사건 발생 두 달여가 지나서야 전격 경질이 발표되면서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박 대통령은 뒤늦게 보고(시점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를 받고 “전역시키세요”라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안의 성격이 육군 대장의 군복을 벗길 정도로 위중한 것이었다면 발생 당시 즉각 보고하지 않은 경위부터 따져야 올바른 순서일 터다.
당장 국방부 주변에서는 “음주 소란 행위로 대장이 옷을 벗는다? 그것도 두 달 만에”라는 의문을 비롯해 갖은 설이 난무했다. 육군 대장의 경질은 현대 군정(軍政)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 참여정부 초기 부대 운영비 유용 혐의로 옷을 벗은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경우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당시 신 장군 사건을 두고 ‘호남군맥 제거설’ 등이 떠올랐다면 이번에는 10월 장성 인사를 앞두고 공석(일명 TO, table of organization)을 늘리기 위한 육사 후배 기수의 기획설까지 나오고 있다.
혐의의 경중을 떠나 1군사령관의 전격 경질 과정에서 갖은 음모론을 배척할 정도의 질서는 찾기 어려웠다. 육군 대장이 전역식도 못하고 쫓겨날 정도라면 사건 발생 당시 크게 문제를 삼아야 했으며 뒤늦게 보고됐다면 지휘라인의 문책이 뒤따랐어야 한다. 국민들이 받은 충격을 감안하면 사건 당일 1군사령관의 행적에 대한 진상조사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송광용씨의 경우는 무원칙과 무질서가 더욱 심하다. 대통령이 순방길에 오르는 당일에 청와대가 송씨의 사표수리를 발표하면서 내놓은 자료는 “송 수석이 학교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단 한마디였다. 어이없는 청와대의 설명에 언론은 갖은 추론으로 공격했고 청와대는 다음 날 경찰과 검찰을 통해 비리 혐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청와대가 처음부터 사실대로 설명했더라면 적어도 ‘인사검증 실패’논란은 면할 수 있었다.
대통령 말씀자료 소동은 청와대 참모진의 혼선에서 비롯된 사달로 드러나고 있다. 외교안보수석실과 홍보수석실 사이의 불통으로 조율되지 않은 사전자료가 배포됐고 뒤늦게 대통령의 연설자료 전문을 취소하는 소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었다는 견해는 오해”라거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는 내용을 포함시킨 외교안보 참모진의 상황 인식을 짚지 않을 수 없다. 한중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미국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하는 것인지,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한 뜻을 이해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소동을 두고 국민의 정부 초기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 외교를 하다 참사로 비화한 ‘ABM조약 파동’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1군사령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라는 고위공직자의 인사는 물론 국제무대의 대통령 연설은 국가원수의 통치와 직결된 영역이라는 점에서 무원칙과 무질서가 판을 친다면 국정혼란 정도가 아니라 국기문란 차원에서 다뤄야 할 일이다. 대통령을 허투루 보좌해 무질서를 초래한 참모나 공직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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