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후 수사관 차량으로 귀가, 경찰 지나친 봐주기로 눈살
여성 캐디 성추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검찰에 기소될 처지에 놓였다. 박 전 의장은 세간의 관심을 피해 새벽에 뒷문으로 기습출두했으며 경찰은 수사관 차량으로 박 전의장을 귀가시키는 등 지나친 편의를 제공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강원지방경찰청은 박 전 의장이 지난 27일 오전 4시30분쯤 성폭력수사대에 출석해 3시간 가량 조사받고 돌아갔다고 28일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박 전 의장은 지난 11일 강원 원주시 지정면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 중 여성 캐디(23)와 모두 다섯 차례 접촉이 있었다고 시인했으나, 팔뚝이나 등을 만진 것은 ‘수고하라’는 의미였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가슴이나 다른 신체 부위의 접촉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라운딩 도중 골프채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상대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피해 여성은 지난 24일 ‘원만히 합의했으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했으나 경찰은 조만간 사건을 춘천지검 원주지청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은 “박 전 의장이 피해 여성과 합의했지만, 성추행 사건 수사는 (친고죄가 아니어서) 합의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박 전의장은 지난 2008년 한나라당 당대표 선거에서 돈봉투를 돌린 혐의로 유죄 판결(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었다.
그러나 비밀작전을 방불케 한 박 전 의장의 ‘뒷문출석’에 대해서는 지나친 봐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박 전 의장은 당초 경찰의 출석요구에 따라 만료일인 지난 26일 오후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8시쯤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강원지방경찰청에 나왔다가 취재진을 발견하고 곧 청사를 빠져나갔다. 박 전 의장은 취재진을 피해 이튿날 새벽에 호반체육관 쪽 출구를 통해 청사별관으로 출두했다.
경찰은 출석시한을 넘겨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새벽에 조사를 진행해 박 전 의장의 입장을 지나치게 배려해 준 모양새가 됐다. 더욱이 조사를 마친 박 전 의장을 경찰 수사팀 차량으로 청사를 빠져나가도록 해 형평성을 어기면서까지 지나친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박 전 의장이 새벽에 갑자기 전화로 조사를 받겠다고 한 뒤 사무실에 찾아와 돌려보낼 수 없었고, 박 전 의장이 조사 중에도 지병 등을 이유로 계속 힘들다고 해 귀가 차량을 지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춘천=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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