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러 영토분쟁 69년… 인접 동부연안 외국특파원에 첫 공개
"북방영토 출신 주민 60% 사망, 생존자도 평균 연령 80세 달해
실제 돌아가 거주할 주민 거의 없어… 황금어장 러 감시 심해 조업 어려움"
일본 정부가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쿠릴열도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ㆍ하보마이군도, 구나시리, 시코탄, 에토로후)과 인접한 라우스초, 시베쓰초, 네무로초 등 동부해안 현장을 24~26일 일본 주재 외국특파원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와 함께 북방영토 일본 영유권 대외 발신을 강조한 데 따른 것으로 한국언론으로는 본보가 유일하게 참가했다.
북방영토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러시아(구 소련)에 귀속돼 69년째 실효 지배중이다. 영유권을 둘러싼 현상변경이 7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현지 주민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2개섬(하보마이군도, 시코탄), 혹은 4개섬 전원 반환을 요구하며 러시아와 협상을 펼쳐왔으나 현실화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섬 반환에 집중하기 보다는 러시아측이 북방영토 일대 어장 개방을 확대,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해결책을 원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북방영토가 정치권의 반환 교섭을 통해 다시 일본 영토가 된다고 해도 그 곳에 돌아가 거주할 주민은 거의 없다.”
24일 세계자연유산인 시레토코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라우스초에서 만난 와키 기미오 정장은 북방영토를 둘러싼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마을에서 네무로해협을 사이에 두고 불과 25㎞ 떨어진 구나시리 출신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 직후 구 소련 병사가 집에 들이 닥쳤다”는 와키 정장은 “이후 3년 동안 러시아인과 함께 거주했으나 어느날 작은 배에 강제로 태워진 채 가족 모두 섬에서 쫓겨났다”고 회고했다. 당시 북방영토에 거주하던 일본인 원주민 1만7,000여명도 모두 홋카이도 등으로 추방됐다. 와키 정장은 1992년 일본과 러시아간 무비자 교류가 성사되면서 비로소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이었지만 현실은 크게 달랐다. 와키 정장은 “살던 집은 물론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러시아식 가옥이 들어서 고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 무비자 교류프로그램을 이용, 매년 500명 가량의 주민이 북방영토를 방문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북방영토의 완전한 반환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북방영토 출신 주민 60%가 사망했고, 현재 남아있는 주민의 평균 연령은 80세에 달한다. 영토 반환이 실현되더라도 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정착할 환경정비 계획조차 서있지 않다.
다나카 히로유키 북방영토대책네무로지역본부장은 “현재 북방영토에 정착, 거주하는 1만6,000여명의 러시아인에 대한 처우도 문제”라며 “일각에서는 이들과 일본 주민이 공존하는 형태의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지만, 형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어느 나라 법률을 적용해야 할 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실토했다. 그는 “그렇다고 현지 러시아인을 추방한다면 그들 역시 영토 문제의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네무로시 노사푸미사키는 하보마이군도의 가이가라섬과 불과 3.7㎞떨어진 일본 최동단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가와다 히로토시 쿠릴하보마이군도거주자연맹 부이사장은 “하보마이군도에 위치한 7개섬은 70년 가량 무인도로 방치돼있어 과거 이 지역에 거주한 주민들의 출입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섬이 반환되더라도 사람이 정착해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북방영토를 마주한 마을 주민은 상당수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에게 세계 3대 어장으로 이름난 북방영토는 군침의 대상이다. 과거 적지 않은 주민들이 조업을 위해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가 나포되거나 숨진 사례도 있다. 일본은 이들의 현실적 소원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어업협상을 맺고, 일정 선박의 조업을 허가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일본 영토이던 시절에 비하면 어획량은 10분의 1에도 못미쳐 어민들의 불만은 가중되고 있다.
네무로해협에서 고래탐방용 관광선을 운행중인 하세가와 마사히토는 증조부가 구나시리 출신인 추방 4세대다. 그는 “십여년 전만 해도 이 곳에서 어업에 종사했지만, 어획고가 줄어들어 관광업으로 직종을 바꿨다”며 “구나시리 근처는 어종이 풍부한 황금어장이지만 러시아의 감시가 심해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북방영토에 정착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일본 정부가 러시아와의 교섭을 통해 보다 많은 어획고를 확보해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라우스초ㆍ네무로(홋카이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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